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4부
- 회사에서 만나지 말아야하는 사람들 이야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폭력적일까?’. 회의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눈 앞에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한 중년 남성이 있다. 너희들은 모두 머저리인데다 자신의 대단한 생각을 0.1도 구체화 못하는 바보 멍청이 집단이라며 비난을 토해낸다. 쏟아지는 토사물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동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누군가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다. 중년 남성이 하던 말을 묵묵히 메모하고 있는 나는 종이에 물음표를 크게 그린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 것인가?
직장생활에 원대한 비전과 꿈이 있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과 인간을 많이 만난다. 아무래도 기업에서 위로 올라간 사람들의 경우 인간 중심보다는 일 중심으로 사고하고 추진력 있게 밀어부쳤으니 성과도 잘 냈을 수도 있다.
가장 강렬한 폭력성을 지녔던 사람 두명을 떠올려보면 상사 김와 상사 박이 생각난다. 김은 애정결핍이었고 박은 자격지심이 심했다. 김은 모든 이들을 곁에 두려고 했고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기미가 보이면 욕을 하거나 시간을 통제했다. 박은 자신의 과거 성과를 반복적으로 말했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우쭐대면 분노하며 폄하했다. 김과 박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유년시절부터 잦은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라는 것.
노벨 문학상으로 이슈몰이 중이라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김과 박의 폭력성에대해 생각했다. <채식주의자> 마지막 부분을 보면 가족에게 폭력을 입던 영혜(주인공)가 피를 흘리고 있는 동박새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포식자에게 물어 뜯긴 모양을 하고 있는 동박새는 폭력을 당한 영혜의 메타포 일수도 있고 아니면 영혜가 직접 동박새를 죽인 가해자일 수도 있다.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소설 맥락을 봤을 때 후자가 가깝지 않나싶다. 집단(영혜의 가족)으로 부터 폭력을 입은 유약한 영혜의 마음에 폭력성이 내재되고 결국 무의식 중에 살아있는 새를 생니로 물어 뜯는 괴물로 승화해 버린 듯 하다.
주변에 유독 폭력적인 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 이 사람은 어떤 폭력을 입고 자랐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앙상하게 마른 영혜처럼 나약했던 개인이 주변에서 입은 폭언과 폭행으로 인해 내면에 폭력성을 키우고 결국 타인에게 상처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가 성장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안타깝지만 폭력적인 인간 주변에 남아있을 정상인은 없다. 가끔은 부모조차도 그런 자식을 거부하곤 한다.
타인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도 문득 별것도 아닌 일에 분노하고 흥분한다. 누군가는 할말 다하고 당차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또한 내가 과거 받은 상처로 인해 발현된 공격성임을. 다른 이들이라면 온순하게 넘어갔을 상황에 굳이 핏대를 세운 건 후천적인 이유가 있음을.
만약 스스로 별것 아닌 상황에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자신의 과거를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강제로 입을 벌려 탕수육을 밀어넣던 가족이 없었는지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강요받은 기억이 없었는지 돌아보며 최대한 그 상처를 매만지며 아물게 치료해야한다. 사회에서 만난 현명한 이들은 상처입은 이들을 금세 알아본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면 멀어지고 싶어한다. 나 조차도 그렇다. 온 몸을 드러내고 분수대에 앉아있는 영혜를 멀찍이 구경하던 사람들처럼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만 생각하며 거리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