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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구의 배꼽 아니, 우주의 티라미수

by 시드니


언어 이전에 감정이 있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창밖에서 그것을 보자마자 하루 몇 만 마디씩 쏟아내며 살아온 내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와… 와…”

그것뿐이었다. 붉은 사막 위로 둥글게 솟아오른 바위 하나. 주변은 끝없이 평평해 그 모습이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신이 지구를 만들다 주머니에 있던 루비 하나를 놓고 간 느낌.


그날 아침 비행기는 연착으로 세 시간이나 지연됐다. 아침 비행임에도 기내는 피곤하고 고요했다. 그 고요는 오히려 내 마음을 시끄럽게 했다. 밀폐된 의자 틈에 갇힌 채 회사, 진로, 관계, 아이 교육 같은 고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다이어리를 꺼내 써 내려가니 몇 년째 같은 목록이었다.


나는 왜 아직도 제자리일까. 십 년째 같은 고민을 붙들고 있다. 여전히 뭐 하고 살아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결단력 없는 내 태도가 또 한숨을 불렀다. 하나의 위안은 고민이 많아 글감이 많았고 그 글감 덕에 작가가 되었다는 것. 고작 그 하나뿐이었다. 창밖에는 처음 보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말라버린 땅, 갈라진 도로. 이곳까지 길을 뚫어 들어온 사람들은 대단하다 싶다가도 ‘굳이 여기까지 와야 했을까’ 싶었다. 인간은 끝없이 한계를 시험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어떤 인간은 나의 한계까지 시험한다. 인간이 싫었다. 가능하다면 혼자 잔잔히 있고 싶었지만 삶의 무게가 그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Prepare for landing.” 기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호주의 상징, 아난구의 성지라지만 결국 바위 하나일 뿐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행기 값 200, 호텔 100, 투어 300… 그 돈이면 일본 여행을 세 번은 갈 수 있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며 머릿속으로 굴을 파고 있는데 앞좌석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 저 멀리 붉은 땅 위로 고독하게 솟은 그 바위 보이고… 모든 말이 사라졌다.


비행기에서 본 울루루. 영상은 블로그에.


경이? 숭고? 감탄? 국어사전을 다 뒤져도 이 감정을 담을 단어가 없었다. 감정이 언어를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울룰루를 흔히 ‘지구의 배꼽’, ‘호주의 심장’이라 부른다. 내 눈에는 티라미수 같았다. 대학 시절 자주 가던 종로의 작은 카페에서 포크를 찌르면 속살이 드러나던 그 티라미수처럼 울룰루도 표면 아래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았다. 울룰루는 우주의 티라미수였다. 당이 떨어진 우주인이라도 한 입 베어물면 단숨에 에너지가 차오를 것만 같은 디저트. 비행기 안에서 끄적이던 고민들은 그 순간 모두 지워졌다.


나는 방금 전까지의 나를 잊어버렸다.

그 붉은 바위를 처음 본 순간 고민도 한숨도, 말도

모두 사막의 바람에 날아갔다.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그게 내가 아니더라도 외로움을 느낀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들 하지만 외로움은 때로 우리를 집어삼킨다. 그러나 어떤 존재는 혼자일 때 오히려 더 완전하고 충만해 보인다.


그게 울룰루다. 그리고 나는 그 고독을 닮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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