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나 Mar 01. 2020

오늘도 '홀로' 일하고 '홀로' 산다

홀로 워크&라이프


인간을 납작하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  수백 가지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외향형과 내향형일 것이다. 으레 내향형 인간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한다는 인식과 달리, 내향형과 외향형을 가르는 더 명확한 기준은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느냐 소모하느냐에 있다는 사회심리학 글을 본 적이 있다. 내향형 인간도 얼마든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결국 대인관계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므로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재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헷갈릴 것도 없는 1000% 내향형 인간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모임을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그런 내향형 인간이 엄마 아빠를 떠나, 동거하던 친구도 떠나 오롯이 혼자만의 독립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3년 전부터는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 일마저도 혼자 하고 있다. 그야말로 안팎으로도 밤낮으로도 진정한 '홀로 라이프'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혼자만의 시간이 넘쳐흐른다.


이런 킨포크스타일의 식탁이 연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은 책 대신 TV나 넷플릭스를 벗 삼아 밥을 먹는다.(feat. 후줄근한 옷 차림) ⓒ픽사베이


직장인보다 하루 일과를 늦게 시작하지만 대신 퇴근 시간을 넘겨져까지 업무가 이어진다. 하지만 대중은 없다. 마감이 몰릴 때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내 일하지만 백수 모드로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날도 있다. 평일 백수 모드에 '역시 프리랜서'라며 부러움의 감탄사를 내뱉을지도 모르지만, 프리랜서가 노는 시간이 많다면 그 그만큼 다음 달 통장이 '텅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프리랜서에게는 고정된 급여란 없으니까.


홀로 일하고 홀로 사는 '1인 가구 프리랜서'인 내 하루는 보통 직장인들의 출근시간 즈음 겨우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을 아주 간단하게 해결한 후에는 산책을 가거나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정신을 깨운다. 어느 정도 정신이 맑아졌다면 이제 일터로 향할 시간. 침실을 벗어나 몇 발자국만 이동하면 나오는 책상이 바로 내 일터다. 그날의 업무를 처리하다가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보통 미팅이나 취재 등을 잡아서 소화한다. 밥을 먹고 나면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노트북을 싸들고 집 근처 카페로 향한다. 마감 일정에 따라 밤까지 일이 이어질 때도 있다.


약속이 있거나 누군가 불러내지 않으면 혼자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밤에는 넷플릭스나 책을 보거나 하릴 없이 뒹굴거린다. 틈틈이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집안일도 한다. 딸린 식구가 없는 1인가구 역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개는 집안일을 해야한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 할 사람은 없다.


등짝 스매싱을 할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아도 감히 침대 위에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등짝 스매싱보다 무서운 건 이불 빨래다. ⓒ픽사베이


일상이 이런 식이다 보니 하루 종일 사람을 대면해서 하는 말은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감사합니다"가 다인 날도 많다. 제아무리 1000%  순혈 내향형 인간이라 해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혼자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노는 날이 많다 보면,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지 않게 된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계절에 한 번씩 도지곤 했던 여행 욕구가 희미해진 것도, 되짚어보면 1인 생활에 프리랜서 생활까지 더해지면서부터인 듯하다. 혼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뒹굴거리는 건,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한창 육아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기혼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면서 말하곤 한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마음 편히 쉴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 매일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직장인 친구들도 말한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일하면 여유롭고 좋겠다"라고.


프리랜서인들의 꿈은 (아마도) 카페에서 일하기가 아니라 나만의 작업실을 가지(가질 수 있는 수입을 가지)는 것. ⓒ픽사베이


그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누구도 100g짜리 종이처럼 납작한 앞뒤면의 삶만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물론  집이 또 다른 일터가 되지 않는(아예 그렇지 않은 건 아니다. 말했듯이 1인 가구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살림을 돌봐야 하니까) 자유가 있는 대신, 1인 가구는 어떤 상황도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 집주인이 '건물주님'의 이름으로 사악한 횡포를 부려도, 한밤중에 병원에 가야할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당장 나를 대신해 일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가장 끔찍해하는 벌레가 출몰해 나를 혼비백산시켜도, 결국 비명을 지르며 벌레를 잡고 뒷처리를 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마찬가지로 온갖 군상의 사람에게 치이는 직장생활과 출퇴근 지옥철은 피해갈 수 있지만, 언제 줄어들지 모르는 불안정한 수입에 대한 압박과 내내 싸워야 한다. 작업실이 따로 없는 경우에는 집이 곧 작업실이 때문에 휴식과 일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늘 신경쓰게 된다. 프리랜서는 결국 1인 기업의 대표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영업하고, 일감을 따내고, 업무 퀄리티를 유지 보수하는 일도 필수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 내린 결론은, 어쩌면 프리랜서야 말로 내향형 인간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업무 형태라는 거다.


그래서 혼자 일하고 혼자 사는 일은, 번잡함보다는 외로움이 좋은 사람에게조차 생각보다 외롭고 예상보다 험난한 라이프스타일이다. 동시에 한없이 자율적이며 편안하고 평화롭기도 한. 물론 행복과 만족도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어떤 노동과 생활의 '형태'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뻔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어떻게'가 아닐까. 나의 현재인 '1인 가구 프리랜서'라는 삶의 형태를 어떻게 좀 더 잘 영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 내게 "프리랜서 하면 좋아요?" "혼자 사는 건 어때요?"라고 물으면 "자기 하기 나름이죠"라는 맥없어 보이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물밑으로는 홀로 라이프를 잘 꾸려가기 위해 열심히 발을 놀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비무장지대에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