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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나 May 24. 2020

나는 어쩌다 '프로 모임러'가 되었나

비무장지대에서 살아남기




"모임을 도대체 몇 개나 하는 거예요? 완전 프로모임러야"


며칠 전 지인에게 “프로 모임러”라는 평을 들었다. 얼마 전 다른  이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딱히 의식해본 적이 없어 그 정도의 커뮤니티 활동 다들 하지 않나 생각하다가, 작정하고 셈을 해봤다. 나는 몇 개의 모임을 하고 있나. 우선 매주 글 한 편을 브런치에 올리는 온라인 글쓰기 마감 모임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리라 수개월간 결심만 하다가 ‘글은 마감이 쓴다’라는 진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만들게 된 모임이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벌칙 등산을 가야 한다. 일요일을 마감 요일로 정한 나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등산을 가지 않기 위해 울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 외에는 직접 사람을 만나는 오프라인 모임이 대부분이다. 목요일에는 카페에 모여 각자 원하는 작업을 하고 헤어지는 느슨한 동네 모임을 하고, 금요일에는 독립잡지를 만드는 지인을 만나 각자의 출판물 작업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취미 모임으로는 매주 동네서점에서 갖는 독서모임, 일요일의 드로잉 수업,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또 다른 독서모임이 있다. 정기적으로 모이지는 않지만 소속되어 있는 동네 커뮤니티와, 현재 준비중인 모임도 하나 있다.


쓰고 보니 별로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평균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수년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확실 모임 수가 많아지긴 했다. 정기 모임 외에도 워크숍이나 일회성 모임 등을 찾는 횟수도 확연히 늘어났다.     



사실 나는 새로운 만남과 모임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인싸’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그런 내가 ‘프로 모임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양한 모임 활동을 하게 된 시기는 프리랜서로 일한 시기와 꼭 맞물린다. 앞서 나열한 모임 중 직장생활을 하던 때부터 이어온 것은 드로잉 모임 하나뿐이니. 모임 프리랜서 활동의 상관관계가 너무나 명백하다.     


프리랜서가 된 후 이런저런 모임을 늘려가게 된 첫 번째 이유는 혼자 일하는 방식이 주는 고립감과 지나친(?) 자율성 때문이다.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미리 계획했던 게 아니라 회사 상황이 빠져 퇴사를 한 후 프리랜서가 된,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에 가까웠다. 이전에도 프리랜서로 일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따로 목표하는 바가 있었고, 프리랜서 생계를 위한 임시직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를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정체화하고 제대로 실현해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작정 뛰어든 프리랜서의 세계는 1부터 10까지 혼자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물론 서에게도 업무 파트너들이 있지만 매일 9시간 이상같은 공간에 부대끼는 회사 동료와는 관계의 결과 질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적으로 커리어에 관한 고민을 나누거나 소소한 정보를 주고받기 어려운 환경이 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고립되고 정체될 거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업무 관련 모임이나 워크숍이 있으면 관심을 갖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건, 이러한 고립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또 하나, 프리랜서는 이름처럼 자유롭진 않지만 그래도 직장인에 비해서는 훨씬 큰 자율성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을 맡을지, 어디서 일을 할지, 하루 중 언제 일을 시작할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마음껏 방만해지기도 쉽다는 의미다. 실제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깨달은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규칙이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일이다.

수많은 자가 실험을 통해서 얻은 답은 루틴 유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인간이 자신의 나약한 의지에만 기대는 순간, ‘결심-실패-자학’의 3단 무한 굴레에 갇히고 만다.      


이러한 노동 환경에서 매주 특정 시간에 만나 작업하거나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등의 모임은 일상에 작은 긴장감과 규칙성을 부여해준다. 회사 동료처럼 매일 얼굴을 보거나 일로 엮이진 않지만(그래서 더 좋다), 비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과 특정 시간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시너지와 든든함도 있다.     



그런가 하면 커리어와 연관이 1도 없는, 순수한 취미 모임의 수가 늘어난 건 업무량의 비 규칙성과 연관이 깊지 않나 싶다. 일이 있든 없든 일정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근로자와 달리, 프리랜서의 일 훨씬 더 예측할 수 없는 파고를 그린다. 어떨 때는 밥 먹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일이 몰리지만, 일이 없을 때는(요즘이 그러하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그냥 백수에 가깝다.

      

노동량이 비규칙적이라는 건 곧 여가 시간도 들쑥날쑥하다는 얘기다. 회사를 다닐 때여가시간은 평일 퇴근 후와 주말로 고정적이었다. 비슷한 루틴을 지닌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친구를 만나서 노는 시간도,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도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여가 시간이 없을 때는 너무 없고 많을 때는 너무 많다. 물론 나는 프로 모임러이기 전에 프로 한량인이기 때문에 돈 걱정만 없다면 100년이든 1000년이든 놀 자신은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업무에 휩쓸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일상의 루틴이 쉽게 무너진다는 걸 깨달았다. 일이 많을 때는 여가생활이고 운동이고 모든 걸 제쳐두며 일만 하다가, 몰렸던 일이 끝나고 여유가 찾아오면 한껏 게을러져 늘어져만 있기 십상인 것이다.      


이런 분석까지 해가면서 모임 활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업무량과 관계없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야겠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나를 이런저런 모임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사회인으로서의 공적인 시간과 사적인 시간, 그중 어느 하나에 함몰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작은 균형추 혹은 알람. 내게 있어 모임은 그런 재가 아닐까.

     

하지만 프로 모임러가 되어 버린 나는 여전히 모임에 목마르다. 특히 요즘 들어 비非전형노동자(프리랜서), 비非혼 등 사회에서 언저리 취급을 받는 이들이 같은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도 일상적인 관계망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 관계망은 기존의 회사 동료나 가족의 대안책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다. 친밀하고 은 사적 관계로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관계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와 결을 지닌 새로운 모습아닐까. 최근 여성이나 창작자, 프리랜서 등의 정체성을 내세운 여러 형태의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생겨나는 현상은, 변해가는 가치관과 업의 형태에 맞는 새로운 관계망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나뿐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가족 같은 정이나 강제적인 역할론 대신 함께 공유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연대하고 교류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연결망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 속에서 나도 이런저런 궁리를 계속해본다. 또 어떤 모임을 해볼까. 어떤 모임을 하면 재미있을까, 필요할까, 지속 가능할까 하고.



write 박의나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글 노동자. 나이문화와 나이듦을 화두로 한 독립잡지 <나이이즘>도 만듭니다.



https://brunch.co.kr/@forgetage/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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