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나 Oct 25. 2021

오래오래 프리랜서로 먹고살고 싶은 이유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공유 오피스 휴관일. 외부 비즈니스 미팅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사무실 대신 하천변이 내려다 보니는 동네 카페에 왔다. 몸 안 가득 스민 눅진한 피로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것 같은(착각을 일으키는…) 햇살이 내리쬐는 통창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에 새콤한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든 생각. 아니 기분.


아, 너무 좋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 중 한 장면

직장인 여러분 죄송합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면서 ‘인간은 왜 노동해야 하는가’ ‘연금복권 당첨되어서 집 사고 외주 다 때려치우고 싶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한숨 쉬었던 것 같은데. 내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기란 어쩌면 이렇게도 쉽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울부짖는 좀비화가 진행된 상태로 출근하기 마련인 월요일, 나는 카페에서 인터뷰 준비와 메일 회신 등의 업무를 처리한 후에 글을 쓰고, 함께 있던 동료는 책을 읽다가 컨디션 난조로 셀프 조퇴를 했다.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업무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고, 이렇게 카페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무드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프리랜서의 큰 장점 중 하나다.


물론 모든 프리랜서가 이러한 노동 환경이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며, 나 역시도 그럴 수 없을 때가 많다. 프리랜서라고는 하지만 미팅을 하거나 취재를 하는 등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마감이 몰리면 장소가 어디든 여유로운 무드는 사치, 오로지 마감을 위한 처절한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프리랜서’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자유로움과 프리랜서의 현실은 사실 간극이 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정하는 데 있어 직장인보다 훨씬 주체적일 수 있음은 당연하다. 미팅이나 취재가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일할지 그리고 몇시부터 몇 시까지 일할지 원하는 대로 나의 하루를 디자인하고 설계할 수 있다. 이 장점이 프리랜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평일 오후의 카페 이용권보다 내게 훨씬 의미 있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아침 시간의 여유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여느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 역시 매일 아침 1분, 1초를 다투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이나 만원 버스에 구겨진 채로 몸뚱이를 회사까지 실어 날랐다. 일단 회사까지 겨우 육신을 옮겨 놓으면 한참 후에나 정신이 겨우 겨우 따라왔다. 나는 유독 아침이 힘든 전형적인 올빼미형+저혈압 인간이었고, 아침에 눈 뜨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불행했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침에 눈을 뜨는 3초쯤은 ‘왜 오늘도 세상이 망하지 않았지, 참 이상하군’라고 습관처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쁘게 몸을 움직여서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버스에 오르기 위해 경쟁을 치러야 하는 출근길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출근 이후의 회사 생활은 할 만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직장인이나 프리랜서나 마찬가지니까. 마음 맞는 동료들이 있었던 덕에 즐거운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아침의 여유다. 내 속도대로 충분히 정신을 깨우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와 함께 하루를 살아 낼 에너지와 의욕도 충전된다. 얼마 전, 업무용 백팩을 하나 샀는데 사은품으로 무려 캠핑용 의자를 받았다. 득템한 캠핑의자를 베란다에 놓아두고 요즘은 가벼운 아침이나 커피를 그곳에서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눈만 겨우 뜬 상태로 삭막한 집 앞 뷰와 함께 커피를 호로록, 토스트를 우적우적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역시 사람은 아침이 여유로워야 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유독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한 해다(어떤 점에서 그런지는 또 다른 글에서 풀 기회가 있겠지). 콘텐츠를 생산하는 업에 대한 피로감이 늘기도 했고, 동시에 언제까지 이 일을 이렇게 무소속 상태로 할 수 있을지 불안감도 여전하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 뿐이지만 평일 오후 카페에 앉아 업무를 하고 글을 쓰면서, 아침 9시에 베란다의 캠핑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몇 안 되는 프리랜서의 이 특권을, 그러나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특권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고.


자, 그러니 다 울었으면 일하자.




박의나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라이터. 독립잡지 '나이이즘'을 발행하며, 에디터 세계 안내서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를 펴냈다. 콘텐츠 기획, 집필, 인터뷰 등 콘텐츠를 만드고 편집하는 다양한 일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출판인의 엄벙덤벙 교보문고 입성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