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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루바 Oct 01. 2024

[치앙마이] 란나 왕국의 후예들

태국 여행기 4.

모칫2 터미널에 도착하고 요금은 183바트. 영어를 거의 못하는 것으로 보였던 택시 기사님께 1,000바트를 내밀며 800바트만 거슬러 달라고 했더니 귀신같이 알아들으신다. 돈이 걸린 일엔 언어가 중요치 않다. 터미널에 들어서자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상상도 안 되는 거대한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눈에 속속 들어온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달라도 배낭을 멘 것만은 같은 처지인 우리들은 묘한 동질감을 형성하고, 그러한 동질감은 눈이 마주쳤을 때 여지없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인사로 드러난다. 꾀죄죄하고 땀냄새 배인 여행자끼리 주고받는 인사는 굉장히 기분 좋은 의식이다. 방콕 버스 터미널은 그 규모가 상당했는데 거의 웬만한 공항 정도의 크기였다. 플랫폼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숫자만 해도 113번까지였으니 그 이상이 될 것이고, 당연히 나는 예매한 표를 어디서 발급받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십 개는 거뜬히 넘는 창구들을 들여다보는데 제복을 입은 안내 센터의 아저씨가 이리오라 손짓한다. 표를 보여주니 단번에 가위바위보 가위를 내듯이 어떤 곳을 가리키고, 고개를 돌려 그 검지 손가락의 연장선을 따라가니ㅡ이러한 친절을 자주 베푼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어질만큼ㅡ정확히 한 창구가 보인다. 감사 인사를 전했더니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 여행자와 달리 한자리를 지키면서 방콕 버스 터미널을 헤매는 이들의 등대가 되어주는 그는 여행자의 인사를 알고 있구나. 언젠가 나도 여행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면 저런 사내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치앙마이행 버스는 57번 플랫폼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어도 57번 플랫폼은 비어있고, 초조한 마음에 56번 플랫폼에 들어서 있는 버스 앞을 서성여보니 왜 이제 왔냐라는 듯이 어서오라 재촉한다. 내 표도 보지 않고 치앙마이행 여행자인지 어떻게 알고 재촉하는 걸까. 표를 보여주니 뭘 그리 걱정하냐는 듯이 얼른 배낭을 싣고 탑승하라 재촉한다. 태국의 버스를 탈 때는 앞뒤로 두세 플랫폼 정도는 살피는 융통성이 필요한가 보다. 저녁 9시쯤 출발한 버스는 노란 가로등이 아직 만연한 밤의 방콕을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비록 불편한 잠자리지만 날이 밝아올 때쯤 태국 북부의 정경을 눈에 담으며 치앙마이로 들어서자고 생각하며 눈을 붙여본다. 톡톡, 누군가 어깨를 건드린다. 이미 날은 하얗게 밝았고, 버스 직원이 나눠준 담요를 수거하고 있다. 창밖을 보니 버스는 치앙마이 터미널로 들어서고, 목의 통증이 뒤늦게 느껴지지만 개운한 잠을 잔 것만은 분명하다. 버스가 멈추고 부산스레 하나둘 하차 행렬이 이어진다. 기지개를 켜며 땅에 두 발을 딛어보는데, 짐칸의 수십여 배낭들이 이미 땅바닥에 어질러져 있다. '너희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10시간을 달려 도착했으니, 이제 배낭 챙겨 떠나라!'는 정말 맘에 드는 시스템이다.


치앙마이 지도를 보면 간략히 중심부의 올드시티와 북부의 창푸악, 서부의 님만해민과 도이 수텝, 동부의 왓켓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으로는 공항이 있고 동쪽엔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위치한다. 나는 이중 특히 치앙마이 올드시티와 도이 수텝에 크게 마음을 뺏겼다. 그것들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변치 않고 살아 숨 쉬는 치앙마이(옛 란나 왕국)의 정체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 태국 최북단의 치앙센을 수도로 한 응오엔양 왕국의 25대 왕이었던 멩라이 왕은 1292년 그 수도를 치앙라이로 옮겨 란나 왕국을 세우고 1대 왕의 자리에 오른다. 이어 외세의 침략을 피해 1296년 다시 한번 수도를 치앙마이로 옮기게 되고, 이후 치앙마이는 곧 란나 왕국이 된다. 한 변의 길이가 약 1.5km의 정방형으로 건설된 올드시티는 현재 그 성벽이 대부분 허물어 동서남북의 게이트를 제하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언뜻 보면 버려진 벽돌 무더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성벽 바깥쪽에 수로를 만들어 핑 강(태국의 북부, 동부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치앙마이를 지난다)의 물을 대어 놓았기에 이를 따라 강국 란나의 요새를 머릿속에 다시 세워보기란 어렵지 않다. 또한, 현재 이 수로는 그 자체로 장관을 연출한다. 수로변의 길게 잎과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 하늘과 도시를 비추는 수면, 그 위로 란나 왕국을 건설한 멩라이 대왕의 올곧은 정신이 8세기가 지난 지금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이 신비로웠다.


올드시티 내부로 들어서면 왁자지껄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상인들과 반짝이는 네온사인의 썽태우와 툭툭 기사들, 그리고 14세기 지어진 이래로 고요함을 미덕으로 유지해온 듯한 여러 사원의 승려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주민들이 모두 란나 왕국의 후예들로 존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일요일에 열리는 야시장 선데이마켓은 치앙마이 배낭여행자들의 시작점으로 추천할 만하다. 현대에 복원되어 그나마 원형의 형태를 갖춘 동문 타패 게이트를 통해 13세기 란나로 들어서 21세기 후끈하고 기나긴 행렬의 시장을 거쳐 14세기 건설된 사원 왓 프라싱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치앙마이의 역사를 아우르는 길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시장이기에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상설 야시장인 북문의 창푸악 게이트 마켓과 남문의 치앙마이 게이트 마켓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저렴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올드시티 중심에는 정말이지 거대한 사리탑 사원이 왕국의 당산나무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왓 체디 루앙'이라 한다. 14세기 샌 무앙 마 왕이 건설하기 시작해 15세기 틸로카 왕의 재위 기간 중 증축이 이루어져 당시 그 높이가 82미터에 너비가 54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방콕의 왕실 사원에 모셔져 있는 태국의 국보 1호 에메랄드 불상이 한때 이곳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1545년 지진 발생으로 사리탑의 상부가 무너져 지금은 약 60미터의 높이로 보존되고 있다. 그래도 태국의 사리탑은 원체 위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지는 형태이기에, 현재 남아있는 부분만 보더라도 그 위용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반만 무너져 내린 상부를 보고 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는 사리탑의 무언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각 면의 상부에는 신전의 입구 같은 구조에 불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아래 거대한 코끼리 상이 사리탑을 받들고, 지면과 이어지는 계단의 양 끝단은 거대한 용 2마리가 버티고 있다. 거대한 사리탑을 보며 내가 느낀 건 아름다움이 아닌 불굴의 의지가 깃든 터프한 성스러움이었다. 이어 가까이에 있는 삼왕상을 관람했는데 맹라이 왕과 람캄행 왕(수코타이 왕국), 응암 무앙 왕(파야오 왕국)이 함께 있는 동상이었다. 간략한 설명으로는 치앙마이 건립에 힘쓴 세 왕을 기념하는 조각상이라는데 이는 현대에 들어 세워진 것으로, 사실상 라마 5세 재위 기간 중 시암으로 병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선 란나 왕국의 문화, 종교, 예술 등의 정체성을 태국과 완전히 병합하려는 시도라고 한다. (치앙마이 건립은 맹라이 왕의 업적이다.)

왓 체디 루앙에서.
멩라이 대왕상과 삼왕상.

치앙마이 시내에서 약 30~40분 정도 운전하면 도이 수텝(수텝 산을 의미) 중턱 해발 1,000미터에 자리 잡은 '왓 프라탓 도이 수텝'에 다다른다. 차량 통행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도로변으로 나무가 울창하여 더위를 벗어나 달리는 기분이 황홀하다. 도이 수텝 사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치앙마이의 성지이자 랜드마크다. 특히 황금으로 빛나는 사리탑과 그 주변에 빈틈없이 메워진 여러 불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사원 내부 관람은 단정한 옷차림에 맨발로만 가능하다.) 향이 피어오르고, 사리탑을 돌고, 기도하는데 삼매경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충만해져서 대웅전으로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런데 대웅전 내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불상이 있는 정면이 아닌 측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측면에 승려께서 앉아 계셨고, 왕실과 승려를 존경하는 태국에서는 그들보다 낮게 자리 잡아 우러러보는 것이 예의이기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 승려께서 중생들에게 몇 마디 전해주고 흰 실로 된 팔찌를 매어 주고 계셨다. B와 나는 무릎 꿇은 행렬의 맨 뒤에 합류해서 느닷없이 합장을 하고 차례차례 승려께 기어갔다. 그런데 이런, 영어로 어떻게 스님을 호칭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 태국어로는 Than(~님), Phra(스님), Phor(스님)을 사용한다고 한다.) 결국 내 차례가 오고 내가 뱉은 말은 "Hello, sir", "옛설", "아임 프롬 코리아, 설" 이었다. 온화한 미소의 스님은 "안녕하세요" 말을 거시며 팔찌를 매어 주시고는 "해피 해피~"라고 외치셨다. 종교와 국가를 넘어 인간의 존재 목적은 행복인 것일까. (태국 승려는 여자와는 옷깃도 스치면 안 되기 때문에 스님은 B의 손바닥에 팔찌를 떨어트려 주셨다.) 행복 팔찌를 선사받고 "땡큐, 설"하고 나가려는데 스님이 끝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대나무 같은 것을 집어 드신다. 그것을 물에 적시더니 어떤 주문을 외며 나와 B에게 물 세례를 해주셨다. 다만 언제 주문이 끝나는지 몰라 끝난 줄 알고 눈을 뜨면 대나무를 적시고 계셨고, 그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어 꽤 많은 물을 전신에 걸쳐 여기저기 맞았다. 아마 행색이 오랜 여행을 하는 이 같으니 많은 축복을 내려주신 것 같다.

왓 프라탓 도이 수텝에서.

왓 프라탓 도이 수텝은 워낙 성스러운 곳이라 그런지 친절하게 다른 언어로 쓰인 안내문을 보지 못했다. 알아보니 진신사리(부처님의 어깨뼈)를 이고 가던 흰 코끼리가 멈춰 서서 나팔을 불고 죽은 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사찰의 영험한 기운엔 죽음도 불사한 흰 코끼리의 영향도 있나 보다. 그와 달리 도이 수텝올 오르던 흰 코끼리가 잠시 멈춰 쉬어간 곳에도 사찰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왓 파 랏'이다. 왓 파 랏은 도이 수텝 사원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한 번 들어서면 왜 코끼리도 쉬어갔는지 알 법한 곳이다. 울창한 녹음 사이로 작은 계곡이 흐르고, 대나무에 매달린 매미들이 목청껏 울어댄다. 이 나무 저 나무 옮겨가는 참새처럼 지저귀는 바람 소리, 비마저 내리면 끝내주는 정경이겠거니 했는데 흰 코끼리가 내 마음을 엿보기라도 했는지 소나기가 한동안 내렸다. 소나기 지나가는 소리에 잠긴 이 이끼 낀 바위 사원은 마치 본래 있었던 듯하고, 그 위로 세월이 흘러 숲이 덮인 것 같다. 순서가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꽤 오래 치앙마이에서 머물 계획의 여행자들에게는 치앙마이 대학교의 '앙 깨우 저수지'도 추천하고 싶다. 웬 대학교인가 싶겠지만 하나의 국립공원처럼 그 규모가 정말 크고 태반 이상이 초록빛 녹음을 연신 발하고 있다. 아무 잔디밭에나 벌러덩 누워버리고 싶은 그런 곳이다. 특히 앞서 말한 저수지엔 대학생들과 교직원은 물론이고, 현장학습 온 어린 친구들부터 관광객들이 산책하며 사진을 찍거나, 누워서 자고, 뛰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나와 B는 하루는 산책을 하고, 그 뒤 이틀을 연속으로 뛰러 갔다. (한 바퀴는 2km가 조금 넘는다.) 그중 하루는 웨딩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신랑 신부도 보았으니, 앙 깨우의 아름다움을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치앙마이 대학교의 정문을 지나쳐 조금 더 직진하면 치앙마이 동물원이 있다. 사실 우리는 코끼리 체험을 하려다 그 값이 꽤 비싸 동물원에 만족하고자 하고 가게 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치앙마이 동물원을 관람하는 것은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씻기고 교감하는 일만큼이나 쉽지는 않은 일이란 것이다. 거의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두 시간 정도가 걸렸고 그 길이 웬만한 하이킹 코스였다. 입장료(350THB)에 맞먹는 금액으로 골프 카트를 빌려주던데 이유가 있었다. 다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그것은 맹수의 왕인 사자를 가둔 우리가 지나치게 낮고 가깝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돌 모양의 담장이 있을 뿐, 맹수는 언제든 내키면 단번에 그 담장을 뛰어넘어 동물원을 점령할 것만 같다. 겁도 없는 B는 코앞까지 가서 사진을 찍으며 나한테 이리오라 손짓했지만 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초입에 있는 사자를 지나 평화로운 동물원 관람을 마칠 때쯤 되니, 말미엔 낮은 담장을 넘어 반달가슴곰이 어슬렁거린다. 참 희한한 동물원이라 생각하며 조용하고 빠르게 곰을 지나쳤다. 란나 왕국의 후예들에게 맹수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어쨌든 치앙마이 시내에서 9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지금 도이 수텝을 둘러싼 계곡 근처의 어딘가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마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오두막 같은 나무집이다.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쉬어가려 들른 곳인데, 아름드리 나무들이 선 잔디뜰 위로 이틀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뒷마당엔 흐드러지게 핀 플루메리아 향기가 만연하다. 그 틈에서 미뤄온 빨래를 하고, 주방에 '옴마니반메훔'이라 적힌 포렴을 보고 친구 Y(손목에 '옴마니반메훔' 문신이 있다.)를 떠올린다. 그렇게 시간을 공들이는 방식으로 나는 치앙마이와 란나 왕국을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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