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카이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방의 한 도시로 메콩강을 끼고 있으며, 북쪽으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과 마주 보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농카이까지는 버스로 12~1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하루에 한 번 저녁 8시에 출발편이 있다. 이튿날 아침이면 농카이에 도착하기에 곧바로 국경 검문소로 향해 라오스로 갈 수도 있지만, 나는 농카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으면서ㅡ오히려 이 점이 나를 매료시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ㅡ바로 국경을 넘고 싶지 않아 나흘간 머무르게 되었다.
버스는 시골이 목적지인 시외버스들이 그러하듯이 작고 많은 간이 버스정류장에 정차했는데, 그때마다 넉넉히 15분씩은 쉬어간 듯하다. 개중에는 북적대는 시장통 한가운데도 있었고 사람이 도무지 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어둠만 낮게 깔린 곳도 있었다.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따리를 든 채 닌자처럼 타고 내렸다. 여유로운 것은 '아무렴 어때'란 표정으로 담배 한 까치 느릿하게 태우는 기사님뿐이었다. 버스의 시계는 세 시간이나 빠르게 가고 있었는데 아무렴 어때 시계인가 보다. 그렇다. 아무렴 어떤가.
버스가 멈출 때마다 요란스러운 중국인과 이런 야간버스는 수도 없이 타보았다는 듯 온몸을 담요로 가리고 자는 현지인, 보따리 닌자들, 우리처럼 국경을 넘기 위해 농카이를 경유하려는 여행객들은 별 탈 없이 1,000km의 밤을 달려 농카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힘이 솟는 나와 이동의 피로로 몸살 기운을 앓는 B는 이산식(?)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B를 재우고, 메콩강변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유유히 걸었다. 강변에 늘어선 전통 시장과 노점상, 게스트하우스, 배처럼 매여 있는 수상 식당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손님은 없고 티베트 고원에서부터 열심히 내려온 메콩강을 따라 시간만 흐르고 있다.
난간에 서니 넓고 짙은 황토의 강은 시간을 집어삼킨 듯하고, 그 속도와 깊이를 알 턱이 없다. 애니미즘 같은 건 미신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사람(나를 포함하여)도 피부로 느껴지는 어떤 신앙의 강렬함이 있다. (또한 그곳엔 밀란 쿤데라가 말한 '추락에 대한 욕망'과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다.) 농카이 사람들의 이러한 신앙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강을 향해 가부좌를 튼 거대한 황금 불상과 나가(Naga) 신의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나가 신은 뱀 또는 용의 형상으로 불교 신화에서 부처를 수호하고 강과 호수, 바다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데 확실히 메콩강이라면 나가 신의 보금자리가 될 법하다. 또한 나가 신은 풍요와 부,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니 수많은 기념품과 표지판, 가로등, 나아가 농카이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속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나가 신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주민들도 많이 보았다.
라오스로 넘어가려는 목적 외에 농카이를 여행하러 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묵묵히 시간이 흐르는 소박하고 한적한 동네니까 말이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데 그렇기에 열심히 단어를 떠올리려 노력하다 "Beautiful"하고 외친 족발 덮밥집 할머니나, 괜히 "Hello"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와닿는 동네다. 한번은 걸어가며 컵라면을 먹는 초등학생 무리들이 나를 힐끗힐끗 보더니 등 뒤에서 "Hello"한다. 이방인에게 건넨 그 인사가 따듯해 나도 웃으며 "Hello"했더니 "Bye"하고 다시 갈 길 가며 컵라면을 먹는다. 그 모습에 괜스레 불량식품이 당겨 학교 앞에 가 닭꼬치와 맛살 튀김을 사 먹었다. 누군가 언어는 미로라고 했던가. 열 손가락 이용해 가격을 묻고 답하고 미소와 함께 엄지 척이면 미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황토 제복의 경찰을 보니, 좀 전에 똑닮은 황토 교복을 입고 있던ㅡ이방인에게 친절한ㅡ초등학생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묵묵히 시간이 흐르면 길에서 컵라면을 먹던 아이도 호각과 경광봉을 들고 저곳에 서 있으려나.
이틀 내내 비가 내렸고, 간밤엔 잠에서 깰 정도로 큰 비가 왔다. 날씨처럼 B의 컨디션도 좋지 않아 숙소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올림픽 경기들을 봤다. 여행자의 욕심이랄까 끈적하고 심심한 랠리만 주고받고 통쾌한 스매싱 같은 감흥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도 여행자의 숙명일 것이다. 날이 개질 않아 빨랫방을 가야겠거니 해서 빨랫감을 정리하고, 국경을 넘기 위한 어떤 마음의 준비 같은 것ㅡ이 필요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ㅡ을 했다. 어쨌든 이국에서 이국으로 향하는 것에는 여권과 배낭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 포함되니까 말이다.
사흘째 되는 날, 거짓말같이 날이 개어 파란 하늘에 둥근 해가 걸려 있었다. 마침 B도 컨디션이 회복되어 오랜만에 러닝화를 꺼내 메콩강변을 시원하게 달렸다. 농카이는 이상하게 다른 태국 도시들보다 시원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메콩강을 끼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우리는 추측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 나와 제각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광장은 나가(Naga) 신의 비호 아래 풍요와 평화만이 가득해 보였고, 그간 움츠렸던 우리는 끼니를 대충 때운 뒤 자전거를 빌려 강을 따라 달렸다. 차츰 행복이 번지는 B의 얼굴을 보았다. 한차례 태양 아래로 세찬 여우비가 지나가 홀딱 젖었지만, 이처럼 무력하게 황홀한 비를 맞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8년 전, 자이살메르의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다 맞은 소나기가 그랬다.)
농카이 서쪽에 위치한 '태국-라오스 우정의 다리'쪽으로 저물어가는 일몰을 따라왔더니, 원래 빈 거리에 노점상이 즐비하고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재수 좋게도 토요일에만 열리는 야시장이라고 한다. 지역 행사의 장이 되는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밴드 공연부터 전통춤과 탭댄스까지 다채롭고 풍요로운 웃음 넘치는 무대들이 잇따라 이어진다. 야시장은 방콕이나 치앙마이와 다르게 태국식과 이산-라오식의 다양하고 저렴한 식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은 동네이니만큼 서로가 다들 아는 얼굴이기라도 한 것처럼 따듯함과 배려가 느껴지는 시장이다. 왜인지 신전같이 지어놓은 건물에 유리창 너머로 누워 있는 여행객들이 값비싼 마사지를 받는 모습이 항상 나에게는 어딘가 경직되고 겸연쩍게 다가왔는데, 비를 피하기 위해 만든 강변의 정자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농카이의 저렴한 노상 마사지샵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웃음이 넘친다. 기회가 되어 어떤 주의 토요일을 맘껏 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꼭 다시 농카이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