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나의 육아동지들
“언니! 애들 데리고 1박 2일 여행 가요”
카톡카톡. 큰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특수한 관계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했고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매주 일요일에 만나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함께 논다. (내가 근무일 때는 나 빼고 만난다.) 맞다. 우리는 육아 동지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처음으로 맘카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맘카페는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가입하고 열심히 글을 올리며 등업을 했다. 맘카페는 지역 커뮤니티로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산부인과는 어디, 대표원장 누가 잘 봐주고, 어느 소아과가 영유아검진을 자세하게 해 준다. 동네의 맛집이 어디이고 어떤 가게가 세일을 하고 있고 어떤 행사들이 있는지 동네 곳곳의 정보를 알려준다. 아줌마들의 출산고민과 육아고민들,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죠? 같은 전문가를 만나는 게 제일 좋은 일에도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적인 맘카페도 있겠지만 결혼 후 이사와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 내 정보를 얻기에는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지금이야 작성했던 모든 글과 댓글들을 삭제하고 탈퇴하기는 했지만 분명 순기능이 많았다. 그런 맘카페에서 매우 충격적인 글을 종종 봤다.(내 기준엔 충격적이었다)
OO동 16년 O월생 친구 구해요
응? 친구를 구한다고? 왜 굳이 아이 친구를 구해야 하지? 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100일 남짓인데 말이다. 100일 아이가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친구랑 논다고 그런 “구함” 글을 적고 있는단 말인가.(그래 너 간호사다.) 아, 물론 '조동'- 조리원 동기가 있는 사람들은 카페에서 '구함'글을 작성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조동이 있었냐고?
아니다. 출산 후 조리원을 알아볼 때 중요하게 본 항목은 쾌적한 공간과, 맛있는 식사, 밥을 내 방으로 가져다주는지였다. 조리원에서의 프로그램 참여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밀린 드라마를 본다던가, 책을 읽었다. 나는 조리원동기가 없다. 혼자서도 재미있게 잘 노는 사람이었다.
엄마들이 아이 데리고 만나 '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데 저 아이는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하네' 하는 비교만 하게 될게 불 보듯 뻔했다. 그 시간에 나는 내 아이에게 집중해서 한마디라도 더 말 걸고 우쭈쭈 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한 치 앞만 본다고 했던가. 그때에 '친구 구해요' 글을 올렸던 엄마도 아이의 친구보다는 아이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시간이었을 것임을 이제는 안다. 만나서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 쉼이며 힘이 된다. 아이의 강건한 성장에 대한 고민과 조언 나눔들, 삶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하고 위로도 받으며 우리도 함께 성장한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고 TV나 게임기가 없어도 재미있게 같이 논다는 사실이다. 해가 바뀌어 이제는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의 어린이들이다. 큰 아이들끼리, 작은 아이들끼리, 때로는 다 같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같이 키우기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 사이에 다툼도 있고 시기도 있지만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에서 서로 배우고 커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우리는 (내가 나이가 젤 많아서) 교류는 없었지만 꽤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다. K와 L은 어린이 시절에 알았고, Y는 20대에 알게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오고 나서 만나게 된 P는 원래 알던 사이인 것처럼 잘 맞는다. 단순히 얼굴과 이름만 알고 친분이 없었던 사이인 우리가 아이들로 인해 친한 사이가 된 건 감히 운명이라고 말한다. 나의 육아동지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큰 힘이 된다.
얘들아, 나이 많은 언니 데리고 놀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