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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롱 Nov 17. 2023

정신없던 김선생의 슬기로운 퇴직생활 2일차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병원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하는 애니메이션 퇴사짤을 사용하여 병동의 모든 식구들에게 선물을 주며 작별을 고했다.  2007년 3월에 입사했으니 20년을 채우고 퇴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학교 동기들 중 같이 입사한 사람이 12명이었다. 간호부장까지 하겠다던 S는 입사 1년 만에 우리 중 제일 먼저 그만두고, 같은 병동에서 눈물 질질 짜며 신규 시절을 함께 했던 J는 이미 병원을 벗어나 공기업으로 간 지 오래다. 행정직으로 빠진 Y는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버티고 있다. 병동에서 골골대던 전공의들은 교수님이 되어 병동을 활보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차곡차곡 인생 2막을 준비했다. '슬기로운 초등생활 브런치 프로젝트 2기'를 겪으며 작가가 되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덧 간호사라는 명칭보다는 작가라고 불리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동기 작가님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함께 글쓰기를 독려하였고 많은 동기 작가님들의 책이 발간되었다. 책을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어느덧 내 작업실 책장의 한편이 빼곡히 들어찼다.

 드디어 이번에는 내 차례다! 지난 20년간의 병원생활을 묶어 썼던 소설 같은 글들이 웹툰으로 제작되었고 그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아직 시나리오 작업까지는 못하지만 원작자로서 자문을 주기 위해 제작진과의 미팅을 했다. 웹툰의 캐릭터와 꽤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를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 눈이 호강을 한다. 임상이 천직인 줄만 알고 지냈던 미련한 김 선생이 슬기로운 퇴직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자기야, 오늘 뭐해요? 난 애들 보내고 작업실 가서 글 쓰다가 시간 맞춰서 애들 픽업할게."

"그래? 그럼 난 당구장 돌아보면서 대대 관리하고 저녁때 경기 좀 보고 올게."


 퇴직 직전에 이사를 하고 내 작업실은 근처 오피스텔에 따로 마련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필라테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 후 바로 작업실로 오니 포근한 느낌이다. 남편은 작년부터 당구장 사업을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헬스장에서 몸 만들면서 트레이너도 하고 친구들과 당구도 신나게 치던 사람이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나와 같이 육아하느라 애지중지하던 당구 큐대도 팔고 운동을 못하는 집돌이 신세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고 조금씩 다시 당구를 치다가 작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편의 컴퓨터에는 파일이 하나 있다. 당구장을 오픈하게 되면 드는 비용과 운영 시간에 따른 수입 등등을 계산해 놓은 엑셀 파일이다. 은퇴 후 당구장 사장님을 꿈꾸며 작성했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내가 지원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당구장 운영하면서 프로 선수들도 초빙해서 경기하고 배우고 하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남편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런가 요리와 청소도 열심히다. 물론 아직 빨래는 내 담당이긴 하지만 말이다.




 엄마가 작가가 되었다고 하니 다섯 살 때부터 작가가 꿈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초등학교 6학년 Rachel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스스로 여러 가지 습작을 만들어 내고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더니 결국 라라앤글에서 책을 내기로 계약하였다. 중학 생활을 앞두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딸을 보니 엄마보다 나은 딸이다. 5학년 Diana는 마냥 천방지축 같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여 미술 전공을 한 내 동생에게 그림에 대한 코칭을 받는 중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하는 어른으로 가는 길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일은 슬초브런치프로젝트 2기 오프모임이 있는 날이다. 5년 전, 프로젝트 공식 활동 마무리 하며 1기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는 근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 땅을 치고 울었다. 그 뒤에 작은 소모임들이 생겨 5년 동안 치열한 병동 생활을 하며 동기 작가님들과 끈끈한 연대를 이루어 오고 있다. 모든 작가님들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한 번 정도라 정말 기대된다.  이번 드레스 코드는 5년 전에 못했던 골드가 될 것 같다. 우리의 수다 단톡방은 여전히 바쁘다. 얼른 들어가서 확인하고 내일의 드레스코드에 맞는 옷이나 신발, 가방을 사러 나가야겠다.

 참, 작가님들 드릴 선물로 골드 만년필 주문 한 것도 포장해야지!

출처: pixbay


 


* 이 글은 5년 뒤 나의 모습을 마음껏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fiction임을 알립니다. 현실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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