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대용량 콜렉터'였던 것이다.
- 아니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이렇게 많이사와??!!
그의 대답은 여전히 늘 똑.같.다.
- 이거 엄청 싸! 두개씩 묶어서 몇천원 밖에 안해!
아 그래...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걸로 아는데, 너한테는 왜 일절 적용이 안될까??
늘 하는 얘기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란 말을 하고 있는데, 그와의 대화는 도대체가 핀트가 안맞는다.
생각해 보라.
저 대용량들을 다 보관하려면 팬트리도 다시 정리해야 되고, 쓸데없이 많은 자리를 차지함으로 인해정작 필요한 생필품들은 보관할 자리가 없어지고,수납이 뒤죽박죽이 되어 물건 하나 찾으려면 온 집안을 번거롭게 다 뒤지고 다녀야 한다.어떨 땐 있는줄 모르고 또 사는 경우도 생긴다.
자칭 미니멀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상당한 스트레스상황이다.
그렇게 보관해서라도 알뜰히 먹는다면야 그 누구를 탓하리. 한 두어번 먹다가 외국애들은 이 짠걸 어떻게 먹냐는 둥, 냄새가 고리고리하다는 둥, 식감이 무르다는둥 온갖 불평만 늘어놓다가 한 일년쯤 지난 후내가 이거 다 어떡할 거냐 물으면 그제서야 갖다 버리라고...
버리는 건 또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음식물 봉투도 다 돈 주고 사야 하는 것이거늘...
게다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이 상황에 굳이 쓰레기를 돈 주고 사서 버리는 꼴 아닌가.
그중 땅콩잼은 정말 미스테리한 품목이다.
이 사람은 코스트코든 이마트 트레이더스든 어딜 가든 늘 땅콩잼을 집어오는데,도대체 집에 땅콩잼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본인도 별로 안좋아하면서 왜 그렇게 뻑뻑한 땅콩잼에 집착을 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몇해전에 사 온 커다란 땅콩잼도 거의 한두어번밖에 안먹어 갖다 버리느라,딱딱해진 잼을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파내고 긁어서 겨우겨우 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그뿐인가. 온갖 햄에 소세지에, 가뜩이나 냉동실이 꽉 찼는데 고기를 큰 팩으로 종류별로 네팩이나 사왔다!
거기다 어마무시하게 큰 피자를 두판이나 사왔으니... 오다가 너무 배고파서 자기가 한 조각은 차 안에서 먹었다나...
결국 지켜보던 내가 한마디 했다.
- 내가 경고하는데,배고플 때는절대 장 보러 가지 마!
참 행복해 보이네...;;;
그러고 보니 그 어느해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이브에 남편이 뭐 먹고 싶은 거 없녜서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내가)알아서 사오랬더니, 밤늦게 양손에 파란 비닐 한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더랬다.
평소 비린 거 입에도 안대는 사람이 갑자기 누구 먹으라고 한 손엔 석화, 한 손엔 꼬막!오다가 농수산물 센터가 보이길래 들어갔다나...
- 이게 지금 크리스마스랑 어울려?
그냥 보따리가 아니라, 진짜 '한' 보따리를 벌크로 들고 나타났으니 황당할 수밖에.
안주거리 사오면 우아하게 와인이나 마시려 했던 나의 작디작은 소망은 말 그대로 소망이었을 뿐.
그날 밤 내내 밥도 못먹고, 석화 닦고 찌느라 비려서 몇 점 먹지도 못하고, 화딱지 나서 혼자 술 퍼마시고 배탈 나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꼬막 삶아 온종일 까고 무치고...
아니, 크리스마스가 원래 이런 거였어?!!
산더미 같은 석화랑 꼬막 껍질 처리후, 아이들을 불러조용히 귀띔했다.황혼이혼 하겠다고...
아이들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는지 모르겠지만, 그 결심은 지금도 아주, 매우, 강력하게 유효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