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아버님이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신지 35일 만에 돌아가셨다.
입원기간 동안 딸인 형님과 며느리인 내가 교대로 아버님의 곁을 지키며 간병했다.
형님은 밤, 나는 낮 담당이었다. 낮이라고는 하나 내가 아버님 곁을 지킨 시간은 대략 하루에 여서일곱시간 정도였으니, 주로 형님이 계신 셈이다.
병세가 안좋으시긴 했지만, 처음 입원하실 때만 해도 아버님이 35일 뒤에 병원에서 돌아가시리란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수십일에 거쳐 시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곁에서 일일이 지켜본 셈이 돼버렸다. 뜻밖에도.
이번에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나서, 죽음의 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병원에서 이렇게 한 인간의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게, 형벌이나 고문과도 같은 이 병원생활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게 과연 맞는 방식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아버님은 치매가 있어 당신 병세에 대한 인지를 전혀 못하셨다. 아버님의 기억력은 거의 5분 정도였다. (그게 간병인으로서는 힘들었을지언정, 차라리 당신 본인에게만큼은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님 방광에는 종양이 있어 소변이 내려오지 못해 통증이 심한 상태였고, 그로 인해 신장이 망가져 옆구리 양쪽에 구멍을 뚫는 시술을 해 소변과 복수를 받아내는 주머니를 연결한 상태였으며, 폐질환이 있으셔서 호흡이 어려워 산소줄을 코에 건 상태였다.
그런 아버님이 가장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은 불행하게도, 당신 발로 직접 화장실에 가는 것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마다 아버님은 몸을 무리하게 일으켜, 주삿바늘과 산소줄을 죄다 뽑고 화장실을 가겠다 난리를 피우셨다.
아무리 '여기는 병원이고, 아버님은 이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태다' 설명을 해도 전혀 입력되질 않았다. 매번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전쟁이었다.
아버님은 그때마다 매번 본인이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 그럼 어떻게 하라는거여?
- 기저귀 차고 계시니까 거기에 하셔야 해요. 여기 다들 그렇게 해요. 괜찮으니까 그냥 기저귀에 볼일 보세요. 제가 갈아드릴께요!
그래도 중간에 잠깐 퇴원해서 집에 오셨을 때는 어찌어찌 부축해서 화장실에 모셔다 드렸었는데, 병원에서는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절망스런 표정으로 가슴에 성호를 그으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런 일은 하루에 셀 수 없이 반복됐다.
아버님은 온몸이 아프셔서 주삿바늘 꽂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반창고 하나 뗐다 붙였다 하는 것도 너무 아파하셨다. 진통제를 맞아도 아무 소용없었는데도, 더 강한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판단해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검사를 이유로 삼십 킬로밖에 안나가는 아버님에게서 매일매일 피를 뽑고, 아버님이 뽑아버린 주삿바늘을 옮겨 또 다른 혈관을 찾아 꽂고, 더운 공기가 나오는 산소 튜브를 코에 걸어놓고, 손발을 붙잡고 억지로 가래를 뽑았다. 나중에는 주삿바늘을 하도 뽑고 기저귀에 손을 넣어서, 결국은 환자용 벙어리장갑을 씌우고 침대 난간에 손을 묶어 놓기도 했다.
아버님 병실에 아버님과 상황이 비슷한 어르신이 한분 계셨다. 연세는 아버님보다 많으시고 폐질환과 신장질환이 있는 중증환자셨다. 근데 그분은 아버님과 달리 치매도 없으시고 의식이 또렷하셔서, 본인 병환에 대해 잘 인지하고 계셨다. 그래서 주삿바늘과 산소줄을 뽑아버리지도 않고 잘 참으셨으며, 기저귀에 볼일을 보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하루종일 얌전히 누워계셔서 간병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환자였으나, 정작 어르신 본인은 몹시 수치스럽고 힘겨워 보이셨다.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 이제 자신은 더이상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실까.
고심 끝에 어르신은 어느 날, 집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돌아가실 거라는 건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르신은 그냥 할머니가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만 담담히 말씀하셨다.
나는 사설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르신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만약 아버님도 온전한 정신을 갖고 계셨다면 어떤 결정이든 스스로 하셨을 텐데. 아마도 아버님 역시 같은 결정을 하셨지 않을까. 평소에도 늘 병원을 싫어하셨으니.
하지만 정작 당신 자식들은 아버님을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
누군가 나의 마지막을 그런 식으로 대신 결정해서 억지로 원치 않는 마지막을 보내게 한다면 난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날 것 같다.
물론 명분은 회복을 전제로 한 치료였기에, 조금만 참으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었을 수 있다.
병원의 그 누구도(의사조차도) 임종이 다가왔으니, 집으로 모셔가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병원은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주고, 염증이 있으면 항생제를 주고, 밥을 못먹으면 링거를 채우고, 숨을 못쉬면 산소를 주입하고, 가래가 끓으면 억지로 빼주는 그런 곳이었다.
가족 스스로 눈치껏 그리고 용기 내어 그만 집으로 가겠습니다! 하기 전까진 그 누구도 존엄한 죽음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보면 제삼자이기에 아버님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음에도, 가족들에게 내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다. 간병이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오해를 받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묻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아버님이 정말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닌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고 '할만큼 한 것이다'라고 인정받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죽음이라는 전제를 처음부터 회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버님이 천년만년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다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미치도록 묻고 싶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아버님이 그놈의 화장실 가겠다는 소리도 안하고, 주삿바늘도 안뽑고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누워계셨다.
눈을 자꾸 위로 치켜뜨시고 섬망 증상까지 있었지만, 형님은 아버님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에도 아버님에게 영양음료 이백미리 한통을 다 드시게 했다.
형님은 퇴원해서 집에 가면 걷기 운동을 시키겠다 했다.
나는 아무 호응도 할 수 없었다. 아버님이 눈을 치켜뜰 때 나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대고 '아버님 돌아가실 거 같지 않아요?'라고 말할 순 없었다.
형님은 먹는 것에 집착했다. 먹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나는 되도록 속을 비워서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억지로 드시게 할 때마다 너무 안타까웠다.
정말 형님은 아버님이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며칠째 밀어 넣은 그 음식물 때문에 아버님 배가 볼록해지고 한껏 부풀어 올랐다. 형님이 변을 못본다고 하니, 병원에서는 관장약을 밀어 넣었다.
형님과 교대 후, 나는 형님이 아버님 드리라고 주신 베지밀을 따라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차마 드릴 수가 없어 그대로 갖다 버렸다.
그리곤 아버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아버님, 이제 그만 가세요... 더 고생하지 마시구요...
아버님은 그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아버님 뱃속의 그 많은 음식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장례 후 밤새 기억나지 않는 꿈들에 시달릴 때가 있다. 꿈을 꾸면 나는 항상 병원에 가있는 것 같아 두렵다.
다들 죽음의 의미가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한답시고 환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의미 없는 시간만 연장해 가는 게 과연 맞는건지.
죽음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는 이런 무지한 문화가 사라졌음 좋겠다. 수년째 부모를 요양병원에 밀어 넣고는 한번도 찾아보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분들 중 대부분은 욕창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죽음의 직면이 두려워 다들 부모님들을 이곳저곳에 밀어 넣고 덜 고통스럽겠지 추측하며 생의 마지막을 남의 손에 맡겨놓고 있지만(물론 그외에도 여러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실상은 그곳에 더 고통스럽고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자각했으면 한다.
병원도 더이상 사람의 죽음을 기계적으로 다루지 말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어느 순간 결단을 해서) 충분한 설명으로 마지막을 선택할 기회를 줘야한다.
누구나 죽을 곳과 방식을 정할 자유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완전히 떨어져 있는 지금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가족들과 충분히 얘기 나누고, 구체적으로 계획할 필요가 있다.
죽음은 추한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마지막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