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리 Nov 30. 2022

It's time to work. I am Happy.

두 번째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dreamforest/33


행복한 청소부 두 번째 이야기.


명문대와 파리 국립대에서 미술 공부를 하신 것 때문이 아니었다. 포트폴리오의 글과 그림에서 느껴지는 사유와 통찰,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낀 상념을 표현한 추상화와 붉은 면장갑 그림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작품 활동만 하셔도 바쁘실 텐데 힘든 노동을 몇 년째 이어오고 계신 것이 궁금증을 일으켰다. 나는 결국 작가님과 날을 정하고 간단히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차와 초콜릿을 준비해둔 테이블 위에 작가님은 감 하나를 예쁘게 포장하여 수줍게 건네주셨다. 곱고 아름다웠다

캐나다에 사는 아들과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신 작가님은 2019년 구순의 어머니를 돌보며 마지막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때 너무 힘이 들어 장례를 치르고 술을 한 달 가까이 마시게 되었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오기 위해 찾은 일이 청소부 일이었다고 한다.


2019년 10월. 아파트 입주부터 지금까지 3년째 일하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무릎에 물이 차올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예순이 넘은 작가님이 왜 청소부 일을 하냐는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과  소소한 일상을 지키며 사는 현재가 더 행복하다고 하셨다. 함께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종종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일에 대한 태도는 바꿀 수 있다고도 하셨다.



낯설게 시작한 청소부,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내게 열어주고 있으며 직업에 녹아나는 세상의 이야기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세상의 그 무슨 일인들 고단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천근만근 무너지는 듯 몸뚱이에 내려앉는 돌멩이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이 상쾌한 고단함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늘도 아주 이른 아침을 가르며 집을 나선다. 땀 흘려야 하는 노동, 조금은 수줍게 인사 나눈 이웃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이른  아침의 길은, 모든 작업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깊고 길은 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오랜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책장에서 “행복한 청소부” 그림책을 꺼내 읽어드렸다. 지금 작가님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좋다며 얼굴이 환해지시자 나는 냉큼 책을 드렸다. 작가님은 해외 대학 입학을 위한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봐주는 일도 했고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신 적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제 진짜 작가님의 작업을 하고 싶고 지금처럼 노동으로 땀 흘리고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아침 8시부터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제외한 하루 6시간의 노동은 작업하는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집중하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다르듯, 직업에 대한 생각과 태도도 모두 다르다. 사회적 편견 없이 필요한 직업을 취하고 가치 있게 임할 수 있다면 건강하고 꽤 괜찮은 사회 아닐까? 땀 흘리는 노동과 땀 흘리지 않는 노동이 필요한 어느 때에서건 의지에 따라 서로 선순환되면 좋겠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싶으면서도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받은 보상의 가치를 아는 작가님 같은 분들이 내 주변 곳곳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It’s time to work. I’m Happy.
작가의 이전글 5살이면 고기 잡으러 가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