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폴짝폴짝
2023년 계묘년이 시작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어느새 2월이 되었다.
겨울잠을 멈추고 토끼처럼 폴짝폴짝 다시 길을 걷자고 생각하니 읽고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림책을 만난 시작은 딸, 리아였지만 그림책을 계속 만나고 있는 건 내게 있기 때문이다. 나의 "때문에"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왜 그림책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
질문이 작은 열쇠처럼 빗장을 열어 낼 수 있을까? 총총.. 그림책이 단서가 되어 바짝 길을 연다. 무엇 때문에?
그림책 “때문에”의 면지에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제8번 B 단조 악보가 실려있다.
슈베르트(1797~1828)는 평소 베토벤(1770~1827)을 음악적 롤 모델로 삼고 가장 존경했는데 둘은 2km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슈베르트의 소심한 성격에 감히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죽음에 이르기 일주일 전 슈베르트는 어렵게 용기 내어 그를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악보를 보여주자 베토벤은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례에 참여한 슈베르트는 운구를 하며 크게 슬퍼했다. 그리고 본인 자신은 다음 해인 1828년, 알 수 없는 병으로 31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책에서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관계가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둘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라는 사람이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에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라는 사람은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지.”
“때문에”가 엮어가는 작은 마법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흥미롭게 펼쳐진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고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콘서트를 준비하려 포스터를 만든 사람, 콘서트홀까지 오는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 콘서트홀을 점검하는 사람들과 좌석 안내원까지 콘서트홀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때마침 누군가의 삼촌은 갑작스러운 감기로 공연을 보지 못하게 되어 그 티켓은 숙모의 특별한 손님에게 돌아가는데 빨간 티의 여자아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C 열 14번 자리, 그곳에서 공연을 본 여자아이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슈베르트의 음악이 별처럼 쏟아지는 무대와 흘러가는 금빛 악보, 소녀를 매료시키고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음악은 결국 그녀를 훗날 그 커다란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녀의 곡은 처음 그녀를 그 장소에 가게 해준 삼촌에게 헌정된다. C 열 14번 자리에 앉은 삼촌과 꽃다발을 들고 앉은 숙모는 이제 나이 든 모습이고 어렸던 소녀는 붉은 셔츠를 입고 지휘하는 멋진 지휘자가 되었다. 그녀의 음악은 또 무엇을 바꾸었을까? 마지막 장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마주치고 만나는 작은 사건들이 일으키는 파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누군가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마지막 면지에는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 힐러리 퓨링턴이 작곡한 곡이 실려 있다. 아름다운 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고 예술은 끊임없이 길을 만든다.
우연의 합주곡 같은 그림책을 보며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내가 그림책을 읽고 쓰는 이유를 찾아보니 그것을 통해 만들어가는 조금 더 나은 나라는 뽀얀 맨 얼굴이 보인다. 그 뽀얀 맨 얼굴에 기대어 활짝 몸을 연 수국이 몸을 세운다. 그림책이 좋고 조금 더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홋, "때문에" 너, 여기 있었구나! 나는 다시 작은 꽃나무 같은 수국을 본다.
기둥 같은 곧은 줄기와 줄기 위에 뻗은 가지들,
얇은 줄기에 하얀 꽃이
빈틈 없이 꽃잎을 맞대고 모여 있다.
외롭지 않을 수국.
외로울 틈 없는 한 줄기 수국꽃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엄마의 볼륨 머리처럼 자꾸만 들여다봐주기를,
너를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너를 들을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많은 것들과의 소통, 이것만으로 토끼처럼 폴짝 뛸 이유는 충분하다.
때문에 | 모 윌렘스 | 앰버 렌 |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