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리 Mar 15. 2023

사랑의 맛과 기억

새콤 달콤 '짝꿍'을 아시나요?

어렸을 때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내 차지가 되었다.

삼 남매 중 가운데에 낀 차녀로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엄마를 향한 경쟁이 있었는데 아픈 날은 잠시나마 엄마가 나만 바라봐 주니까 그게 좋았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먹고 싶은 것을 하나 고르게 해주셨는데 그때 나는 ‘짝꿍’을 골랐다. 포도맛과 딸기맛의 새콤한 알갱이들은 감기약보다 효과가 좋은, 아픈 날에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었고 100원짜리 과자가 흔했던 시절, 200원짜리 짝꿍을 먹고 있으면 왠지 더 대우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짝꿍’은 엄마의 사랑이 채워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고자동 할아버지가 ‘순임아~’ 다정히 부르며 입안에 넣어주던 알록달록한 사탕 옥춘당은 어떤 맛이었을까.




고정순 작가님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며진 ‘옥춘당’을 읽으며 나는 몇 차례 훌쩍였고 유년 시절 ‘짝꿍’이 떠올랐다. 기억의 힘이랄까. 순임 할머니가 ‘옥춘당’을 맛보며 할아버지로부터 온전히 사랑받던 아련하고 충만한 기억은 혼자가 된 길고 긴 그리움을 견디게 해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는 전쟁고아였던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의 삼 남매 중 장남 고상권 씨의 딸이 고정순 작가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휴지 두 칸, 세 칸을 세며 아끼던 가난했던 그 시절, 할아버지 집에서 손녀딸은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선풍기 앞에 앉아 “아아아” 소리 내며 여름을 보낸다. TV 위, 못난이 삼 형제 인형과 한 장씩 뜯어 쓰던 일력, 옛날 라디오와 전화기들이 참 정겹다. 늘 다투던 부모님과 달리 고자동 할아버지와 김순임 할머니는 서로에게 다정했는데 할아버지가 낯을 많이 가리던 할머니를 품어주며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고아였던 할아버지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술집에 나가는 여자들이 쉴 수 있게 집을 내어주고 집 앞에 가로등을 설치해 주며 변방으로 내몰린 약자들에게 온기를 베풀었다. “순임아~” 할아버지가 불러 제사상 위의 알록달록한 옥춘당을 입에 넣던 날,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겠지. 동글동글 떠오른 옥춘당 위, 두 분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행복이 오래가지 못한 것도 운명이었으리라. 슬픈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오니 말이다.

고자동 할아버지가 폐암 말기로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가 실어증과 치매가 왔을 때 말없이 그린 동그라미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달콤하기도 하고 약간 박하향이 나기도 한다는 옥춘당의 맛, 그 사랑의 기억은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붙잡아 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었고,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 살았던 할머니가 결코 놓을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그림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주 보고 있는 새 두 마리와 할아버지가 떠난 뒤 혼자 남은 전깃줄 위의 새, 그리고 마지막 훨훨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고 헤어지며 또 다른 세상에서 자유롭게 다시 만난 날들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곁에 있을 때 사랑을 더 많이 나누고 소중한 기억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다면!

세 개의 소제목 아래에는 각각의 다른 옥춘당이 보인다.

첫 번째 알록달록하고 결이 또렷한 옥춘당과 달리 두 번째 옥춘당은 무늬를 잃었고, 세 번째 옥춘당은 색이 빠진 모습이다. 희미해지는 기억일까, 혹은 옥춘당을 깊이 맛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걸까. 


마지막 장면 속 할머니가 남기고 간 실내화, 직접 그리셨을 듯한 두 개의 선, 옥춘당을 떠올리게 하는 무늬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옥춘당을 넣어주는 고자동 할아버지처럼 넉넉하고 아낌 없이 나누는 삶이기를,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 깊이 깊이 아로새겨진 사랑, 바로 너와 나의 이야기이기를!




작가의 이전글 "때문에"를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