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여행 이야기
남태평양 푸른 바닷속 눈부신 열대어와 산호초 사이, 오랫동안 닫혀 있던 조개껍데기를 가만히 펼쳐본다.
우윳빛 작은 진주알 하나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소년은 그것을 품고 작은 꽃반지를 만들어 한달음에 뛰어간다.
레몬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의 손은 꽃 진주 반지와 함께 노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해진다.
사랑을 고백하고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머금은 진주는 이제 여자의 보석함으로 옮겨지고 창가에 다가온 눈 밝은 새 한 마리로부터 기나긴 여행이 시작된다.
바다를 항해하는 하얀 돛 위의 새 둥지로 간 진주는 배 안에서 생활하는 고양이 한 마리의 장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곧 선원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고 보석 세공사에게 전해져 찬란한 왕관 작품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검은 시선들이 오가며 절도범의 질주에 내동댕이쳐진 진주는 더러운 하수구에 빠진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들쥐 한 마리에 의해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세상 모든 일은 행과 불행이 서로 자리를 내어주며 길을 만들고 멀리서 보면 어쩌면 그것의 경계조차 희미한 선 위의 사건들일 뿐이다.
꿀꺽!! 진주는 결국 연어의 뱃속에 들어가고 연어는 꼬마 아이의 점심 메뉴가 된다. 연어를 썰며 발견된 진주는 꼬마 아이의 새로운 놀잇감으로 새총의 총알이 되어 메이플 시럽 공장을 향해 날아간다. 창문을 뚫고 진주알은 수많은 시럽 병 하나로 쏙 들어가고 그 시럽은 아마도 처음 조개를 연 소년의 손, 이제 할아버지가 된 남자에게 다시 닿는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운명처럼 다시 꽃 진주 반지가 만들어지고 레몬 블라우스의 고왔던 손은 이제 주름이 가득한 여인의 손이 되어 진주 반지를 재회한다.
변함없는 사랑을 얘기해 주는 그림책, “진주의 여행”을 보며 오래 헤매었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다시 돌아올 것을 떠올려본다. 한결같지 않다고 쉽게 낙담하지만 그것 또한 체념하지 않을 이유가 될 거라는 것, 언제든 상실은 끝이 아니라고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짧은 경구가 글 없는 그림책의 마지막 그림처럼 느껴진다.
“우연이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