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내는 여성 예술인이 된다는 것
SNS는 여러 문제점을 껴안고 있다지만 나는 소셜미디어를 활발히 이용하는 이용자 중 한 명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의 소식을 보거나 내 소식을 전하고는 하는데, 이제는 개인적인 연락보다 SNS로 주고받는 안부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말 몇 마디 나눠보지 않은 사람들과 SNS로 이야기 나누며 친해지기도 하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SNS로 응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소셜미디어는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존재에 속한다.
가끔 오디션을 보다 보면 개인 SNS 계정을 묻는 제작자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곤 한다. 내가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소셜미디어 계정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자에게 하나 둘 내 개인 계정을 알려주다 보니 어느새 나와 소통하는 팔로워 중 상당수가 작가, 감독, 캐스팅 디렉터, 배우 등 콘텐츠 제작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얼굴이 웃기게 나온 사진이나 사회에 반항하는 글을 종종 올렸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그저 무난한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J님 역시 나와 SNS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이다. 작년 여름,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영화 하나를 찍으며 J님을 만났다. 여성 스태프들로 이루어진 촬영 현장에서 여성 서사를 다루는 여성 영화의 여성 주연으로 참여한 것인데 거기서 건너 건너 J님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지만 SNS로 서로를 팔로우하며 소식을 전하고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행보를 응원하고 있다. J님의 인스타그램엔 J님 다운 글과 사진, 스토리들이 올라온다. 주로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식의 내용이다. 나는 J님의 게시물 상당수에 동의하는 편이며, 이러한 행보를 응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배우로서 나의 역할,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단순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즐거움을 넘어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내는 것. 세상을 표현하거나 세상을 거스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섞이면서도 세상과 싸워야 하는 존재가 예술가인 것 같다. 그런데 뭐든 상업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참 쉽지 않다. 예술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예술 작품을 내놔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을 요구하다 보니 절충된 완성품은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식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한때 SNS 사진용으로 보이는 전시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것을 보며, 인생의 이치를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모순이 가득한 에세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며,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혐오 표현이 가득한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며 나는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예술을 통해 내고 싶은 목소리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한편으로 나의 SNS를 보며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내는 게 앞으로의 배우 활동에 제약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지인들의 우려를 듣고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처럼 입지가 없고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배우, 속된 말로 잘 팔리는 배우가 되려면 사람들에게 순응하는 ‘무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표현하는 사람이 세상에 순응하고 목소리 내지 못한다는 건 모순적인 일이다. 배우로서 목소리를 내는 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까?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간 결국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게 될까?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직업과 멀어져야 하나?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는 곧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괴로움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순의 괴로움을 밀어내는 건 언제나 ‘연대’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여성 예술인들을 보며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을 얻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욕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또한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서도 연기하는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란 듯이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한다.
J를 포함한 여성 예술인들을 응원한다. 우리가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꾸준히 세상에 목소리 내는 사람이기를, 그렇게 살아남는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고, 껴안으며 앞으로를 응원하고 무언가를 축하하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오늘도 목소리 내는 여성 예술인들의 인스타그램에 마음껏 좋아요를 눌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