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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r 07. 2022

근육을 키워야 하는 이유

나와 나의 관계에 대해

항상성. 그것은 무섭다. 스스로를 돌보겠다는 결심도 잠시, 나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이전으로 돌아갔다. 조급하게 스스로를 몰아치는 버릇은 졸업과 동시에 기세를 더했던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글을 쓰는 요즘, 스스로와의 관계는 어떠냐는 질문을 듣고 한참 벙쪘던  이런 기세 탓이었을 것이다. 관심조차 두지 않던 나와의 관계. 어쩌면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는 핑계로 가장 중요한  놓치고 있었던  아닐까.


누군가는 이제 겨우 3월이라 할지 몰라도 내게는 벌써 3월. 올해의 1/6이 지난 시기다.

1/6, 1/4, 1/3... 언젠가부터 일 년을 기준으로 시간을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다.

부지런히 가버리는 시간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뒤쳐지는 나의 성숙도.

그러고 보면 나는 나를 늘 어떤 존재에 뒤쳐지는 사람으로 보고 답답해했다.

시간이란 물리적 존재와도 다투고 있는 나.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거라는 말에 나는 유독 담담하지 못하다.


남들의 선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

그중 배우라는 직업은 외모부터 실력까지 평가받는 게 일상이다. 평가의 기준도 제작자에 따라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어느 한 수치를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있는 건 나의 역량을 키우며 선택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수없이 떨어지는 오디션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

성질이 급한 내게 길게 보고 기다리는 일, 언제 끝날 지 모르는 평가를 감내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지만 이 직업을 선택한 이상 별 수는 없다.


어제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그동안 무언가를 이루게 해달라는 요구, 왜 들어주지 않냐는 원망을 주로 했는데 어제는 그냥 모든  겸허히 받아들일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뒤쳐지는 나의 속도, 이뤄지지 않는 일들, 틀어지는 계획도 그러려니 받아들일  있게 해달라고, 그냥 거기에 무너지지 않고 걷게만 해달라고 빌었다.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나는 ‘왜 이루지 못하냐’고 묻고 질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 이루어지지 않지?'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이뤄졌어야 한다는, 내가 이룰  있었다는 전제가 숨어있고,  안엔 자신에 대한 과신과 오만이 숨어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과정을 통해 과신은 불신으로, 오만은 절망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항상성을 생각하니 스스로의 노력 없이 불신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고 느꼈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팔랑거리는 정신과 신체에 근육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야 긴 긴 인생을 오래 완주할 수 있겠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나의 삶을 마주하는 것도 헉헉거리며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것도 괴롭고 땀이 나는 과정이지만, 조금씩 나의 근육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으면 잠시의 고통을 즐겁게 감내할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보자고, 과정을 감내하는 나를 기특해하자고 다짐하는 요즘, 나는 다시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급여를 받으면 새 운동복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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