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nina Oct 09. 2020

갓 지은 밥을 공기에 담는 마음

아끼는 마음과 불필요한 기대는 하지 않는 마음

뜨끈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펄펄 김이나는 갓 지은 밥. 이런 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저도 매일 새 밥을 짓습니다. 새 밥을 뜰 때면 스스로가 조금은 괜찮은 아내이자 엄마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어요. '밥을 공기에 담을 때의 마음'때문이랍니다.

 



지난 명절, 여러 부부와 커플을 보았어요. 힘든 일은 누구나 있지만 편안해 보이는 분들도 계셨고, 많은 것이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분들도 계셨죠.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며 관계에 있어서 불필요한 기대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서로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했어요. 자우림의 <샤이닝> 노랫말처럼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현실에 있었으면 했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 자우림 노래 <샤이닝> 부분


그런 너무나 큰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감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특별히 기대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배우자와 깊은 이해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결핍이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그런 로망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존재한다면 분명 멋진 관계니까요. 하지만 꼭 가지고 싶은 어떤 것은 아니라는 것. 포기라기보다는 특별히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루하루 자연스럽게 지내고 편안해지다 보면 어느 날 남편과 그런 이해를 나누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해요. 그런 관계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이젠 결핍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하늘은 높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요즘 같은 좋은 날엔 괜스레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걸 가을 탄다고 하나요?) 그럴 땐 숨겨둔 내 마음을 노래해주는 것 같은 자우림의 <샤이닝>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해요. 퇴근길 느린 걸음으로 이 노래를 듣다 집 앞에 닿으면, 노래를 끄고 이어폰과 함께 남편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도 가방에 넣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갓 지은 밥을 차리지만, 먹을 때 행복하지 않아


'오늘 저녁 뭐하지?' 문 열고 들어가며 항상 하는 고민입니다.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짓고, 남편과 아이 취향의 음식을 하나라도 새로 하려고 해요.


좋은 마음으로 쌀을 씻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내 남편의 잔소리가 날아오기 시작하는 날이 많아요. 가스레인지 불 위에서 무엇이든 굽히거나 끓기 시작하면 제 마음도 함께 타들어가고 부글부글 끓습니다. 아무리 '기대'는 가방에 넣어뒀고, '당신이 옳다'를 떠올려보지만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이런 것을 어떤 감정이라고 해야 할지. 갓 지은 밥이 완성되어도, 먹을 때의 제 기분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곤 합니다.


식사 준비부터 정리까지 몇 시간이 걸려요. '엄마 나랑 놀아줘' 타령은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고요. 매일 저녁 여러 가지 감정이 뒤죽박죽 된 설거지통 앞에서 '그래, 빌 게이츠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설거지를 한다고 했지'라고 중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그나마 저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인 것은 다행입니다.

GettyImagesKorea




허기를 달래주고 싶어 밥을 짓는 자

'삶의 완성자, 사랑의 노동자'


평소 남편 밥에 신경을 쓰는 터라, 얼마 전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란 책 제목에 꽂혀 읽었어요. 이 책에서 사랑의 핵심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 말합니다. 제가 남편의 허기(배가 고픈 고통)를 느끼는 것, 이것도 사랑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렇게 느낀 고통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면 그 고통을 완화하려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연민과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데, 연민은 행동을 낳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사랑이라는 표현은 저에게 어색해요. 해야 할 말은 못 하면서 엉뚱하게 밥이나 열심히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그저 심플하게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는 저에게 저자는 이런 말을 건넵니다.

'삶의 완성자'가 '사랑의 노동자'이다. 사랑이란 나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고통을 완화하려고 하는 감정이자 의지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사람을 더 배고프지 않게 하기! 우는 사람을 더 울게 하지 않기!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하지 않기! 피곤한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하지 않기! 그러니 밥을 먹이고, 웃게 해 주고, 함께 있어주고, 쉬게 해 준다. 이 모든 일이 노동이 아니면 무엇일까?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강신주, 2020

 

이 부분을 읽고, 스스로에게 '삶의 완성자이며 사랑의 노동자이다'라는 말은 할 수 있겠더라고요. 같은 책에 인용된 김선우 시인의 <고쳐쓰는 묘비>라는 시에도 나오는 표현이에요.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

         - 김선우, <고쳐쓰는 묘비> 


시인은 울음이 먼저이고 웃음은 그다음이라는 통찰을 전합니다. 우리는 웃으며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고 울며 태어나는 존재이며, 고통 뒤에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 태어날 때의 울음은 우리의 삶이 원초적으로 고통이라는 의미이고, 웃음은 본능으로 해결된다기보다 고통 뒤에 '배우는' 것이고요.


고통을 직면하고 그것을 완화하고자 행동하는 사람이 '사랑의 노동자', '삶의 완성자'라는 것. 매일 갓 지은 밥과 남편 취향의 찬을 챙기는 나도 '사랑의 노동자이며 삶의 완성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넘치게 담은 밥 한 공기, 오히려 고통?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남편 밥공기에 밥을 한가득 꾹꾹 눌러 담는 제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러다 뜨끔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배고픔의 고통을

      완화하는 것은 사랑이자 동시에 선한 일이다.

     그렇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한 공기의 밥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 같은 책 p45


한 공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두 공기, 세 공기를 들이밀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배부름의 고통'을 다시 선사하게 된다는 것인데, 저는 항상 한 공기 이상(배부름의 고통)을 남편에게 권했거든요. 많다고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밥한다고 생색내는 것도 아닌데, 남편 밥은 항상 큰 공기에 고봉으로 담았어요. 다만, 주걱을 들면 밥 할 때 들었던 잔소리만큼 밥을 담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남편은 제가 차려내는 대로 배가 불러도 남기지 않는 편이에요. 조용한 식사 후 대자로 곧 잘 뻗는 걸 보면, 밥이 많았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면, 한 공기만큼만 사랑하면 된다는 것. '고통의 감수성에도 중도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제가 중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것까지 마음대로 해 놓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끼는 마음


여전히 '사랑'을 글로 적고, 입에 올리는 일은 저에겐 어색합니다. 사랑 대신 쓸 수 있는 표현으로 동양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아낀다'는 말이 있어 다행이에요(같은 책 p284).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알지?'는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내가 당신 아끼는 거 알지?'는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사랑이라는 말이 이렇게 대중화된 것은 100년도 채 안되었다고 해요(같은 책 p284). '그래서 내가 아직 사용하기에 어색할 수 있어'라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도 해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색하면, 아낀다는 표현이라도 좀 해야겠어요.


이렇게 길게 남편에 대해 기대하지 않기, 아끼는 마음 가지기에 대해 쓴 것은 그만큼 행동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렇지만 동시에 변화하고 싶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서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고 즐겁기도 하며 살고 싶어요.


이젠 갓 지은 밥이 남편, 나, 아이 모두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한 끼가 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요. 제발~

갓 지은 밥으로 먹음직 스럽게 차린 한끼 사진을 못 찾았어요. 계란말이 김밥은 그래도 갓 지은 밥으로 쌌겠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에게 미안할 때 나는 김밥을 쌉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