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맑은 날, 어디를 보며 살아야할까?’
아내가 어느날 부지불식간에 무너지면서 전혀 마음의 준비도 할 틈이 없었다. 네번인가 다섯번 희귀난치병의 진행으로 온 재발이 폭탄처럼 연달아 터지더니 마침내 사지마비가 되었다.
힘들고 괴롭고 뭐 그런 사실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빠른 속도로 여러 기관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신경이 마비되면서 당장 당장 해결을 하면서 따라가기도 벅찼다.
폐가 마비되면서 산소호홉기를 구해 숨을 쉬어야했고 방광 대장의 신경이 마비되면서 소변을 작은 호스로 빼내고 항문에 좌약을 넣고 씨름하고 수시로 비닐장갑끼고 손으로 파내야했다.
눈은 실명하고 안대를 채우다 색안경으로 보호겸 가려야했고 목욕과 욕창관리때문에 두시간 간격으로 배게를 왼쪽 오른쪽 교대로 옮겨가며 고여야했다. 병이 왜 왔는지, 어떻게 하면 치료가 가능한지, 그동안 치료비용은 어떻게 구할지 고민할 틈도 없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였다.
시간이 좀 흐르고 환자인 아내도 돌보는 나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옆 침대에 누가 입원해있는지 누가 퇴원하고 누가 새로 오는지도 눈에 들어왔다. 창밖에는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하며 먹고 사는지 걱정도 되고 알아보았다.
그런데… 익숙해지고 적응을하기 시작하니 그 여러가지 일들중에 가장 힘든 것이 드러나고 어떤 일은 좀 쉽고 감당할만 한 것으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숨 쉬는 것이 가장 어려웠고 나는 두 시간여마다 체위변경하는 것이 잠이 모자라 못견딜 일이었다.
2년 가까이 지나면서 재활훈련 덕분인지 천만다행으로 손가락부터 꼼지락 거리다가 손목 발목 허리에 신경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힘을 주면 등짝을 침대시트에서 잠시지만 살짝 뒤척여 줄 정도가 되어 갔다. 등을 세워놓으면 두어시간 후 털썩 바로 눕히는 정도까지 가능해지자 잠을 잘 간격이 길어졌다.
사람은 참 강하기도 하고 한편 참으로 약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알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자 이제는 세시간마다 아내의 소변을 빼주는 일이 가장 힘들어졌다. 잠들만하면 나를 깨우고 그러면 바로 잠들지 못해 한참을 뒤척이며 고생해야했다.
그뒤로도 계속 하나씩 줄을 이어서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해결을 하거나 견딜만하니 그 다음 어려운 일이 또 가장 나를 괴롭히는 원망의 대상이 되는 식이었다. 수천만원의 병원치료비를 방송국 도움받아 해결하니 매달 낼 비용이 또 근심이 되었고 그걸 이럭저럭 해결하니 수시로 맞아야하는 항암주사비가 또 큰파도처럼 달려왔다.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도 안쓰고 지내다 그것도 걱정거리로 올라왔다.
아… 이런 반복이 세상 사는 현상이구나. 뭐만 피하면 다리뻗고 홀가분하게 웃으며 살 것 같지만 실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은 본래 인생이 그런것이라 그럴수도 있고 또 사람의 본성이 계속 적응하고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덕을 부리면서 끝없이 벗어나지 못하는 감옥같다는 진실이었다. 사람의 연약한 본성 같은…
수시로 싸움질하고 스트레스 받던 병원 화장실 목욕실 사용문제가 집으로 옮겨온 후 해방되었다는 감사로 신났지만 불과 반년도 못되어 그 감사는 까맣게 잊어지고 이제는 배변의 어려움이 큰 바위처럼 아내와 나에게 숙제가 되어 괴롭혔다. 점점 약해지는 근력과 체력은 열번 배변에 두세번은 졸도에 가깝게 쓰러지고 나머지도 침대까지 간신히 돌아와 누운 다음 헐떡이며 녹초가 되었다.
이 문제가 좀 해결되면 정말 아무 새로운 문제가 없을까? 또 무엇인가 지금은 일도 아닌듯 감당하던 것 중에 하나가 이것만 없어지면…하는 대상이 되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을까? 지나온 경험으로 보건데 반드시 그럴것이다. 또 무슨 문제가 근심이 되고 미운 대상이 되고 끙끙거리며 살게 할 것이다.
비 오는 눅눅한 날이 싫다고 그걸 투덜거리며 또 오네, 또 언제 오겠지? 그러고 살다간 필시 우울증을 넘어 원망과 좌절의 일상을 살게 될거다. 결코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이런 저런 날씨들이니까. 반대로 맑은 날도 늘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때마다 감사하고 즐겁게 맞이한다면 그것 또한 세상 끝날까지 없어지지 않을 축복으로 주어질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떤 날을 기다리며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할까? 아내의 화장실 배변문제로 녹초가 되고 밉다 밉다!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감정 추락을 하다가 문득 지난 날을 돌아보며 반성해본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과 기운 아니면 어두운 악의 유혹에 묻혀 살게 될테니 나를 지켜달라는 기도의 마음으로!
- 2024.11.17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안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