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갓! 세상에 이럴수가~”
날마다 수십년째하는 면도를 하다가 새삼 신세계를 만난듯 놀랐다. 정말 솔직하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고 한편으론 어떻게 그동안 몰랐는지 참 내가 한심했다. 오늘도 사용한 전기면도기는 벌써 9년째 사용하는 구닥다리 골동품이다. 뚜껑은 벌써 깨져서 버렸고 충전도 간격이 짧아져서 자주 코드를 연결해둬야한다. 더 문제는 날이 수염을 뜯는 것 같이 아프고 잘 안깎여 몇번을 더 왕복해야했다. 바꿀까? 몇번이나 고민하다가 고장도 아닌데 돈 아깝게 뭘! 하면서 그냥 쓰는 중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은 문득 오늘 전혀 뜯기는 아픔도 없고 깨끗하게 수염이 깎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러니 신기할수밖에!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싱겁다못해 어이가 없어진 그 이유는... 바로 속도였다. 평소 밀고 나가는 속도의 절반 정도로 기분상 거의 멈춘듯 느리게 옆으로 옮겨갔더니... 이런 놀라운 결과를 경험한 것이다. 이 간단한 방법을 9년이나 모르고 성질 급한 본성대로 빨리빨리 이동을하며 깎으니 뜯기고 잘 안깎이고 두 번 세 번을 왔다 갔다 해도 시원치 않았던 것이다. 천천히만 옮겼으면 그동안 그 고생 안했을 걸.
‘에휴... 성질머리 고치지 않으면 어디 면도만일까? 평생 부작용에 살다가 성질 급해서 죽는 것도 분명 빨리 죽을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실소를 했다.
하긴 면도는 이 일에 비하면 큰 일도 아니다. 웃을 일이지.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 데 거의 25년이 걸렸다.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내가 그것을 인정하고 알게 되는데 걸린 시간이 그랬다.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들 셋 낳고 나무꾼과 선녀처럼 20년 넘게 사는 동안도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다. 생각과 말로는 사랑한다고 늘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흉내사랑이란걸 알게된 시점이 아내를 만난지 거의 25년 되었을 때였다. 아내가 희귀난치병으로 나무통 처럼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지낼때였다.
그동안 연애하고 결혼하고 살 동안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고 필요를 채운 것이었다. 남에게 보이기 적당한 장점들을 가진 괜찮은 여자를 고르고 남들과 내 눈에도 비난받지 않게 원만하게 사는 가정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기위해 꼭 필요한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으로 아내를 관리해온 것이다. 말썽부리지 않고 잘 지내도록 달래고 고장 나지 않게 아껴주고 내게 필요한 여러 부분들을 채우면서...
그런데 아프고 5년쯤 지났을 때 난 알았다. 더 이상 아내의 역할을 못하며 오히려 내게 중한 간병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떠맡겨 남은 건 밑지고 무료 봉사만 남은 상황에서였다. 아무 것도 필요없고 아내라는 존재 자체가 살아서 내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뜨거운 무엇이 자주 나를 눈물흘리게 했다. 아내가 꿈속에서 죽어 없어진 날에는 그 정도가 최고로 심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전에 사랑이라고 내가 주던 것들은 마치 일한 사람에게 주는 월급이나 수고비 같은 보상이었다는 걸.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사랑이라는 아픈 시선, 기다림, 그리움이 어떤 감정이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그 심정을 제대로 아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 25년! 하긴 50년 60년을 살고 죽을 때도 모르고 가는 부부들도 많다고 하니 뭐 무지 늦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전기면도기의 사용법 하나를 제대로 알아서 기분좋게 사용하는데도 9년이나 걸리는 미련한 사람이니 25년도 빠른가? 고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