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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Dec 28. 2021

티어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1, 혼자 있고 싶어요.


옅은 주황 수면 램프 아래에서 한 손은 아이 팔베개를 해주고 한 손은 어색하게 꺾인 관절과 손목으로 핸드폰을 주섬주섬 찾아든다. 비슷한 때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오랜 우정을 이어가는 데에는 큰 자양분이 된다. 교복을 입고 까불며 등교길을 함께 했던 친구가 산후조리에 대해 한말이 생각났다. 애 낳고 산후조리할 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핸드폰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가 손목 나간다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핸드폰의 푸른 대기화면이 번쩍하고 얼굴을 인식하여 열린다.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핸드폰을 열고 잘 안 쓰는 수많은 어플 중에서 하루에도 몇백 번은 들락날락 거리는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26일이 되니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비슷비슷한 크리스마스 피드가 식상하다. 클릭하지 않는 한 내용을 볼 수 없는 스토리를 올려다본다. 최근 소식이 뜸했던 인친의 스토리에서 ‘번아웃’이 와서 엄마, 와이프, 딸로서 백기를 들고 넷플릭스를 켰다는 사진 한 장.


오랜만의 소식이라서 반갑지만, 그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깡총깡총 내 맘에 쏘옥 들어온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의사를 만나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저녁밥상머리에서 들은 터였다. 내가 철 부족 혹은 호르몬 등의 이유 때문에 오늘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고 판단함 때문이다. 거의 저녁식사 전까지의 온 하루를 혼자 생각할 공간과 시간을 가졌기에 타인의 나에 대한 판단에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된 후였다.


“시어머니, 저 괜찮아요.”


며느리: 영국의 의사를 정신행동적인 문제로 볼 생각이 없으며 영국에 관련 상담 및 약물 복용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 오늘 낮의 내 행동은 매우 죄송하다. 3년간의 모유수유를 떼려고 하니 14킬로의 쭈쭈를 물겠다는 아이의 강인한 의지와 체력전에 피로와 긴장이 누적되었고 새벽 3시에 깬 아이를 다시 재우며 설잠 자는 와중 새벽 3시 반에 술에 취해 기분 좋은 남편을 보며 방을 옮겼고 그런 후 새벽 5시경부터 기어오르는 얘들 때문에 너무 피곤했으나 아침에 남편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꼴을 보았다. 아침부터 너무 피곤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례하게 행동한 점 사과드린다. 단유란 아이에게도 힘들지만 나를 찾는 아이를 계속 거절하고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내 감정과 체력이 너무 소모되어 힘들었다.


시엄마는 처음으로 내 생각을 똑똑히 전달하는 나를 보고 당황하여 자신이 산후 우울감 관련 약물을 복용한 경험에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고, 영국 의사들이 그렇게 못 믿을 정도는 아니다.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걱정이 된다.



며느리: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건. 내가 그걸 뭐라고 할 순 없지만 나의 입장과 상황은 다르다. 외국인으로서 영국에서 살아가는 내 미래를 위해서 언젠가 내게 불리하게 적용될지도 모를 어떤 공식적인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남편, 당신도 힘들면 나에게 직접 말을 하라. 엄마가 아니라. 나는 분명히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랬고, 그건 너 때문이었고 그래서 대화가 혹은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당신과 나의 문제를 시어머니와 나의 문제로 확장시키지 말라.


시엄마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너희를 어렵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하다고 하였다.



며느리: 난 시부모님들 좋다. 당연히 무례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은 의사가 해결해 줄 문제나 질병이 아니다. 아이들이 아직 유아기라 밤에 통잠을 못 자니 너무 피곤하다. 스파이들도 잠 못 자게 고문하지 않는가. 과학이 풀어줄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이다.


오랜 연륜과 현명함을 지닌 시엄마는 다행히 더 이상 나를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몰지 않았다.



어머니,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이로써 내 생각은 정확하게 전달하였고 후회는 없다. 하지만 마음속 날 것의 덩어리들을 건져내어 정제하고 영어라는 짤주머니에 넣고 다시 한번 깔끔하게 정수를 뽑아내야 했으니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특히 지금은 남보다 더 먼 남편과 그 자를 이 세상에 내놓은 두 명의 타인들 앞에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을 내 것이 아닌 양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다소 굴욕적이었다. 중간중간 무섭게 어그러지고 있을 내 표정과 주름 사이로 조용한 눈물이 가끔 흘러내린다. 최대한 꽉 틀어막아 보지만 그럴수록 얼굴 근육은 더 어그러진다.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조용히 닦아줘야지.


내 눈물은 안타깝게도 조용히 흐른다. 그래서 누구도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닦아내면 되니까. 울고 있는 것에 연민이나 관심을 보이는 것도 싫다. 무엇보다 눈물이 무기가 되는 것이 싫다. 안타까워서 양보받는 것이 아니라, 응당 그러한 것이기에 마음이 힘든 것이다. 감정적 너울이 크게 휘몰아치고 있는데 그 너울을 넘어 이성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건 욕심이다. 이쁘지도 않은 내 눈물은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은 족히 흘러내린다. 멈춘 줄 알았다가도 작은 먼지 같은 돌멩이에도 툭, 이제 진정이 되었는가 싶다가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툭, 시간 너머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남편의 눈빛에도 툭. 이 식사 시간이 일초라도 빨리 지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음식과 후식까지 최대한 욱여넣으면서 절대 체하지는 않으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아이들 다섯, 개 한마리, 강아지 한마리, 어른 여섯의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다음 날이었다. 남의 식구 속에 섞여서 관심 없는 이야기에 하하호호 웃고 밥 차리는 거 거들고 치우고 거들고 치우고 그 사이 애들도 보고 먹이고 씻기고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가족 행사나 그룹 활동은 언제나 버겁다. 학교도 힘들었고 회사도 떠남에 미련이 없었고 친구들과의 저녁과 수다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라는 거미줄에 걸려있노라면 그 후에는 꼭 혼자 있고 싶었다.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고 외국에 살기 때문에 맘이 편했다. 부부사이에 대화가 중요하지만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언어를 쓰기에 모든 생각과 뉘앙스 하나하나가 시시콜콜 들리고 읽히는 사이보다 적당한 물음표와 거리가 유지되는 것이 좋았다. 과도한 것보다 부족한 것이, TMI보다 The less the more가 좋았다. 꽉 찬 것보다 동양의 산수화처럼 여백이 주는 여지가 좋았다. 닫힌 결말보다는 열린 결말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놈의 영어도   들리고 작은 뉘앙스의 차이도 감지해내고  생각이 영어로도 정리가 제법 되고 영국식으로 화가 표현이 되니 차라리 영국에  첫해의 나와 같이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하던 부처 같은 미소로 평정심을 유지했던 그때가 립기까지 하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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