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윗 물이 정상이어야 아랫 물도 정상이다
결국 퇴사한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빗방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입니다.
잔잔한 봄비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 새삼 기분을 좋게 만들죠. 반면 장대 같은 비는 축축하고 또 찝찝하게 만듭니다. 그뿐일까요? 엄청나게 많은 비는 한 순간에 한 지역을 집어삼키고 없애기도 합니다.
창문에 얼굴을 내밀어 날씨를 확인하다 보니, 오늘 글 주제가 딱 생각났지 뭡니까!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2018년, 한 검사의 고발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
이후, 체육계, 언론계, 그리고 문화예술계까지 모두 #Metoo 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자신들이 겪은 문제를 세상에 알린 것인데요.
그리고 약 1여 년 만에, 문화예술계의 큰 파장을 일으킨 극단의 한 예술 감독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제 끝이 난 것일까요?
아니요,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투 운동, 그 후 1년
과연, 제대로 된 법적 혹은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었을까요?
지금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은 어디만큼 왔을까요?
문화예술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대해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과제 발굴을 위해 출범한 대책위원회. 총 두 번에 걸쳐 관련 내용을 담은 권고문을 발표했는데요, 권고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성희롱·성폭력 고충처리 시스템 설치
▲ 성희롱·성폭력 신고상담센터 연계 강화
▲ 체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근절 방안 마련
▲ 표준계약서 개정 및 활성화 방안 마련
▲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정책의 지역 확산
문화예술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말씀드리면요!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제정해야 하고, 해당 법 제정 전까지 현행 "예술인 복지법" 내 성희롱 및 성폭력 고충 처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즉각 마련해야 하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성희롱·성폭력으로 인한 피해 구제 내용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 방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해당 법을 통해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셈입니다.
아울러 대책위는 문화예술 분야별로 운영되는 성희롱·성폭력 신고상담 창구를 연계하여 운영하고, 피해자 관점의 "문화 분야 통합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라고 추가 요구했습니다.
필자 역시 통합 신고 상담 센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하고 또 민감한 문제인 만큼 보다 전문적인 인력과 자원이 필수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니까요.
현재 운영 중인 성희롱·성폭력신고상담센터 창구는 예술인복지재단,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그리고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가 있습니다. (기억해두세요!)
+ TIP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예술인을 위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는데요! 찾아보니「예술인 권익보호의 이해」 온라인 교육도 있더라고요!
저작권, 계약, 그리고 성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 시 대응방안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온라인 교육 바로가기 : http://kawf.khcu.ac.kr/)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고보조금 관리 운영지침을 개정하여 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공적 지원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곧 다른 제도적 장치(예술계의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과 피해 구제 지원)도 실행 방안을 계획하여 실시할 것이라고 합니다. 성평등문화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 신설도 협의도 중이라고 하네요.
아차차!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분야별 실태 조사 내용을 곧 발표한다고 하니, 잊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아, 참! 또 소개해드릴 것이 있어요.
성폭력반대연극인공동행동이 미투 운동 1년을 맞아 소책자를 만들었는데요, 실제 연극인들이 겪었던 성폭력과 위계적인 조직문화에서 일어난 폭력 등을 희곡 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불편한 연극은, 성폭력이 난무하는 연극 수업, 서열에 따른 폭력적인 조직문화,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현장 그리고 뒤풀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을 담고 있습니다.
2018년 여름부터 연출·작가·기획·배우 등 6명이 모여 책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약 20개의 대본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이후 중복되는 것은 추려 총 6개 장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교육"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사실 아시다시피 많은 예술인들은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폭력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매년 직장 내 성희롱 교육을 받지도 않고, 누군가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성폭력반대연극인공동행동은 이와 같은 예술인들에게 '그것은 성폭력'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교육 차원에서 불편한 연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형식적이고, 일반 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만든 성희롱 예방 교육은 연극계 현실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연극인들이 겪은 실제 사례를 책에 담았다고 하네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지금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불편한 연극 책자 바로보기 : http://bit.ly/2DydGNm
성방연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theaterwithyou/
또한 성폭력반대연극인공동행동은 미국의 '시카고 시어터 스탠더드(Chicago Theater Standard)'를 참고하여 "코리안 스탠더드"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카고 시어터 스탠더드'는 미국 내 오디션, 연습, 공연 종료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대처법을 정리하고, 공연예술계에서 성차별·성폭력적 작업 방식을 반대하며 만든 자체 규약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 그리고 그 상황에 따른 대처법이 담긴 "코리안 스탠더드".
앞으로 정말 기대가 되네요!
2019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안내서>를 제작했습니다.
해당 안내서 첫 장에는 문화예술계의 일면을 다루고 있는데요.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문화예술계에서는
일대일, 혹은 일대 소수의 도제식 교육을 받는 것이 흔하며,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은 소수 권력자의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인들은 힘의 불균형에 의해 개인의 권리를 발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희롱과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죠.
이로 인해 본인이 직접 피해를 경험했더라도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고 (69.5%, 922명), 문화예술계 활동에 불이익이 우려돼서(69.5%, 789명)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고질적인 문제죠.
자신의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관행으로 여겨왔다는 것.
정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필자는 늘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리고 '잘 알지 못했다'도 변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예술인들이 성폭력 교육도 잘 들으면서, 불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자기주장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 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자신이 처한 일이 아니라고 해서 쉽게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라는 점, 잘 알고 계시길 바랍니다. 모르는 척 방관하는 것도요. 선배여도, 후배여도, 동기여도, 선생님이어도. 모두 똑같습니다.
어찌 보면,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은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이 넘쳐흐른 것이겠죠!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관행은 꼭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를 다루어보았네요.
한창 뜨거운 열기로 뉴스 화면을 가득 메우던 미투 운동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느꼈거든요.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잘못된 관행은 똑같이 반복되고, 더 고인물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정부와 다양한 단체에서 노력하고 있는 듯하여
안심이고, 또 좋습니다.
앞으로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우리!
- 2019. 04월
*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