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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아빠 Jan 09. 2022

게으른 아빠의 정원일기 #6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생명이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튤립  - 위스퍼스 드림)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너무 습해도, 너무 건조해도, 너무 양분이 많아도, 너무 양분이 적어도 살아나기 힘드니


핵심은 '적당함'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적당함의 기준이나 한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대개 그건 보이지도 않고 보여줄 수도 없는 영역에 속하기 마련이다.


언어 영역의 밖에 있다.

다만 우리는 대상 각각의 '보이는 것'과의  지속적인 교감을 통하여


 어렴풋하게나마 '보이지 않는 것'의 아주 미묘한 파동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몸 전체를 통하여 스스로 느낄 뿐이다.


같은 비단향꽃무(스토크) 씨앗이라도  실제로는 적당한 온도, 적당한 습도, 적당한 양분을 주어도 전부 다르게 성장한다.


도중에 고사하기도 하고, 크기도 다르고, 자라는 모양도 다르다.


한마디로 개성적이다.

옛날부터 농부들은 '하늘 농사가 절반이다'라고 이해했다.


 이 말은 사람의 노력이 아무리 커도 자연의 도움 없이는 작물이 제대로 생장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토록 생명은 '적당함'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축인 '보이지 않는 것'의 도움 없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어린 풀 한 포기가 자라는 것도 가볍게 볼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기적이다.


하나하나의 생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시의적절한 교감과 절묘한 균형이 빚어낸, 값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예술작품이다.


로또 1등이 당첨될 확률이 대개 800만 분의 1이라고 하는데,

이 무한 우주에서 우리 자신은 어느 정도 확률로 지구에 태어나는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는 이미 로또 1등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기적으로 이 땅에 온 것이다.


생명 하나하나가 세상 모두를 품고 온 '메시아(Messiah)'라는 생각이다.


모든 '보이는 것'들이 도왔고, 또한 모든 '보이지 않은 것'들이 도왔다.


'도왔다'는 것은 '늘 함께 다'는 것이다.


완벽한 '적당함'의 우주적 하모니.


자연스러움 그 자체.

요즈음 우리 집 두 아이 육아에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행복한 사랑둥이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보노라면 '힘듦'과 '힘들지 않음'의 언어적 경계가 모호해진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흔히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이 모른다는 것'을 품고 있을 때 깊이를 더해간다는 역설(paradox)이라고나 할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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