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루쉰는 한자가 멸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고 할 만큼 한자는 너무 복잡하고, 많고, 거기다 새 글자는 자꾸만 생기고 있다. 2000여 년 전 후한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에 나온 글자가 거의 9천 자, 부수가 540여 개다. 이후 사전에 수록된 한자는 대략 5만 자 이상 점점 늘어났다. 문맹률을 줄이기 위해 1956년 한자 개혁 이후 1964년 2236자, 부수는 214개로 간략화되었다. 이것이 간체다. 80%에 육박한 문맹률은 간체 사용으로 15% 이하로 낮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자는 번체다. 그렇지 않아도 먼 한자가 더 저 멀리로 갔다.
‣ 예서의 등장
번체도 감당하기 어려워 간체가 나왔는데, 저 옛날 전서(소전)는 어땠겠나. 회화적인 상형에서 벗어나 추상화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획은 많고, 균일한 힘을 주며 붓끝 1/6쯤으로 써야 하는 곡선의 좌우 대칭인 전서는 쉽게 쓰기 힘든 문자다. 이런 불편함을 개선해 획은 간단하게, 빠르고 쓰기 쉽게, 곡선보다 직선을 표방하며 등장한 서체가 예서다. 예서는 진(秦) 나라의 정막이 만들었다지만 이 서체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사용되었고 그는 최종 정리한 것으로 본다. 예서의 명칭에 대한 설이 구구하다. 그래서 예의를 갖춰 패스요.
한 무제 때 국가 공식문자로 정착되었던 예서는 한나라와 같은 날 탄생하지 않았지만,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진시황은 5체 중 소전과 예서, 무려 2번이나 등장했지만 진나라는 너무 짧았다. 그 영광을 받아낸 한나라는 부지런히 굵고 길게 중국을 지켜냈다. 수많은 간독이나 비각, 중국 최고의 기준이라는 유교 13경 중 무려 11경 편찬, 사마천의 사기 등 굵직한 기록물은 진시황의 분서 사건으로 인한 공백기를 메워냈다.
예서의 기록물은 크게 비석과 간독으로 나눈다.
‣ 예서의 특징
문자가 특정계층만의 리그였을 때와 달리 비석에 새겨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한나라는 비석 천국이었다. 그리고 비와 첩에 비해 살짝 열외의 자료로 취급되었던 간독은 발굴을 통한 엄청난 공급량을 자랑하며 자리를 확보해냈다. 간독은 서체의 변혁기를 두루 거치며 5체를 다 볼 수 있으며, 특히 예서가 전국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중요한 자료도 있다. 출토된 수는요~ 수십만 개쯤. 일목요연하게 계통을 세우기 힘들 정도로 각양각색의 다양한 간독의 글씨는 초보자의 무병장수를 위해 패스~.
예서는 긴 시간을 지나면서 다양한 스타일에 따른 이름도 많~다. 초보의 시선으로 예서를 진예(고예를 포함)와 한예(팔분을 포함) 2가지로 나누며,그 구분 기준은 波勢(파세)다. 특히 팔분의 파세로 무장한 횡획의 기필은 잠두(누에머리), 수필은 안미(기러기 꼬리) 모양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매력은 흘러넘쳤다.
비석의 글씨를 살펴보면 유려함, 강건함, 화려함, 고졸함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임모는 예기비, 사신비, 을영비 등으로 시작한다기에법첩을 사서 입첩과 출첩을 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치니 글씨가 중구난방이다. 예서는 가로로 긴 사각형 모양으로 생겼다. 예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서체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밀려본 적 없는 내 덩치를 닮은 넓적한 모양에 애착이 가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이 아름다운 서체는 현대적 감각에도 밀리지 않아 현재 광고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광개토대왕비는 굳이 소속을 찾자면 파책없는 진예 라인이지만 장엄하고 심플한 독창적인 예서다.
끝날것 같지 않던 한나라도 스러져가면 넘사벽 등장인물이 있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이었는가? 이었다면 극복했는가의 서성 왕희지와의 조우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