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우개선 문제를 말하다
이번 주 금요일, 전 직장 동료가 영어 유치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정말 벼르고 벼르다, 1학기 방학을 기점으로 퇴사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처음 영어 유치원 근무를 시작한 것도 8월 말이었거든요. 학기 중이라 당연히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주변에 꽤 있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다닌 곳은 4월부터 담임이 없어서 부원장님께서 몇 달간 공백을 메꾸는 상황이었고요.
그리고 영어 유치원에서 2년 반 가량을 근무하면서 도망치듯 사라지시는 선생님들을 꽤 많이 보곤 했어요. 사정을 일일이 다 말하고 가지는 않지만, 제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아파도 쉴 수가 없어요.
운동 중에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어 119에 실려 응급실에 후송되고 다음 날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저는 수술 후 1주일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더니, 난색을 표하셔셔 3일 만에 퇴원을 했더랍니다. 제대로 걷지도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눈 다래끼가 생겨도 아이들이 하원한 뒤에야 눈치 보며 갈 수 있었어요. 얼굴이 하얘지고 구토 증상이 있어도 토를 두 번을 하고 나서도 진정이 안되면, 아이들 하원하고 조기 퇴근 (1시간 정도?)이 가능합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나와서 일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은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 고열과 두통에 시달려, 하루 연차 사용을 요청하셨지만.. '출근해서 자리라도 지키고 알림장이라도 쓰'라는 요청을 받고 출근하셨던 일화도 있었고요.
생리휴가, 병가 사용이요? 대기업 직장인들이나 공무원들이나 쓸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나 자신이 아플 때 보호받지 못하면, 일이고 뭐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백 번 천 번 되뇌곤 했답니다
2.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물론 계약서 상에 점심시간은 1시간이 기재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심시간이 제 시간이 아니더라고요
밥으로 장난치는 아이, 잘 먹으려다가 식판 뒤엎는 아이, 먹여주지 않으면 음식 쳐다만 보는 아이, 의자 장난만 하는 아이, 반찬 더 달라는 아이, 편식이 심해 지도를 해주어야 하는 아이까지... 16명을 다 케어하려면 세 명이 아니라 다섯 명도 부족할 겁니다
교대로 먹으라는 지침에 교사들은 식사를 마시고, 서서하고, 3분 안에 식사를 마무리합니다.
한 선생님은 결국 폭발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동물이에요?"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전 내내 셔틀부터 아이들 수업지도, 화장실 케어, 식사 케어까지 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3. 행사 준비는 퇴근 한 시간 전에, 회의는 퇴근 30분 전에?
아이들과 행사하는 건 저도 즐겁습니다.
전 핼러윈 코스튬도 굉장히 신경 써서 입는 편이고, 여름엔 수영복까지 챙겨가며 확실하게 즐기는 편이죠.
그 재미난 행사 일정을 늘 긴박하게 알려주셔서 준비 기간도 하루 이틀밖에 없다고 공지가 뜹니다. 뭐.. 그렇게 야근을 하지요. 퇴근 시간만 기다렸는데 행사 준비라고 일일이 각도 재고 붙이다 보면 그냥 힘이 빠지더라고요. 야근 수당이라도 주시면, 그나마 낫겠지만.. 간식이랍시고 피자 한 조각, 호떡 하나가 제 몫으로 오면 오히려 화가 나더라고요.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하시네요. (누가 괜찮은 지는 모르겠습니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선생님들은 또 힘이 빠지곤 합니다
---------------
담임 선생님들의 책임감을 약점 삼아 교사들의 기본적인 권리까지 침해받는 일들이 잦다면 경력 있는 선생님들은 계속 떠날 것이고, 신입 영어유치원 교사들도 간 조금 보다가 사라질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