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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Jan 03. 2021

첫 숙제를 마친 소감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결혼한 지 4년이 넘도록 계획적인 삶을 위해 피임에 철저하였다. 뭐 결혼까지 했는데 한 번도 없어?라는 주위에서 묻는 경우가 있었지만 결단코 없었다. 아직 준비는 안된 것 같았지만 배란일 어플의 알람에 첫 숙제(?)를 하였다. 숙제라는 표현도 맘 카페에서 좀 예습하며 배운 것이다. 어떤 자세가 좋은지 배란일 전후 몇 일 연속으로 해야하고 무슨 음식이 좋고 등등 여러가지 정보도 급히 배운대로 좀 흉내도 내보았다.


첫 시도가 끝난 다음날부터 남편은 마치 동화구연을 하는 톤으로 배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이 괜히 자꾸 아기 얘기를 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고.


"ㅇㅇ아~~ 아빠야~~"


제 멋대로 태명도 지어서 부른다. 잘 몰랐는데 설레발과 호들갑이 제법이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조심스러워졌다. 출근해서 퇴근하고 집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들에 신경쓰이는 부분이 생겨났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려다가도 양수를 맑게 해 준다는 루이보스티로 대신하고 높은 곳에서 무엇을 꺼내려다가도 참았다. 급한 성격 탓에 자주 뛰어다니는데 사뿐히 걸어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직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생명체에게 휘둘리기 시작했다. 또, 갑작스럽게 삶의 낙을 잃었다. 퇴근 후 맥주 한 잔이 간절했으나 마실 수가 없었다. 아차 싶었다. 3개월 전부터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벌써 엄마가 될 자세가 안된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술 못 마셔서 힘들어하는 것 자체가 좀 불량하다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임신하면 조심해야 하고 안 되는 것들이 뭐 이리 많지. 


나름 초조하고 긴장하는 나날의 10여 일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니 아랫배가 살짝 아픈 느낌이 바로 대자연이 찾아왔구나 싶었다. 역시나였다. 그날 저녁 남편과 피쳐를 비워냈다. 안주도 매콤하게 곁들여서 말이다.


나름 2주 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취기에 알딸딸해서 누워있다가 며칠 전 눈물을 머금고 친정집에 나눔 한 술들이 생각났다. 아 모히또는 보내지 말 걸. 아니야 집에 있음 괜히 더 먹고 싶어 지니까. 잘한 일이야. 지금 냉장고에 있는 맥주만 마시고 이제 마시지 말아야지. 아 이 맥주도 마시면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천사와 악마까지는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나와 철이 좀 덜 든 내가 부던히 의견을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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