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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Oct 08. 2020

두 세계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넘나드는

제2 언어로 [수어]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 수어 교육원 초급반을 다닌 지 7회 차가 됐다.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7시간인데 수업 전후로 하는 여러 생각은 7시간을 진작 넘었다. 민들레 홀씨마냥 홀홀 날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인데 배우면 배울수록 생각과 감정이 뻗어나간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과 두근거림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몰랐다는 핑계로 실수하고 잘못했던 내가 보여 쥐구멍에 숨고 싶다. 오늘도 고작 한 주 전의 내가 부끄럽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무지했구나. 몰라서 그랬다는 말을 쉽게 했구나.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녔다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었겠구나.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래도 나름대로 알고 배우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으니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시기에서 반의 반 뼘쯤은 벗어나지 않았을까? 이 시점에서 지난 게시글 중 ‘모든 청각 장애인이 농인은 아니다.’가 반짝 주목을 받았다. 브런치 유입자 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했으며, 공유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다니!’보다 ‘나 뭐 실수했나? 잘못 말한 게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덜컥 무서워 글을 다 내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더랬다. 농문화를 배우는 시간은 마냥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의 연속인데 수업 시간이 끝나 줌(Zoom)을 끄고 나면 마음속에 돌덩어리 하나 꾹 얹어놓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청각장애인, 청각장애, 농인, 농문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에서 오는 불편함은 아닌데, 도무지 어떤 불편함인지 설명할 수는 없는 상태에 봉착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에게 태어난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짧은 프롤로그를 읽고서 아무런 방해 없이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고 싶었다. 무지렁이 상태를 벗어나 ‘이제 나도 알아.’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프롤로그를 지나 세 지은이 중 이현화 씨의 글을 읽으며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놨다. 수어를 배울 때 예습은 하지 말고 복습만 열심히 하자는 다짐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한 글자마다 꼭꼭 씹어 삼키듯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모르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고,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 편견이 끼어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에는 무릇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음성언어가 기반인 한국 사회에서, 흔히 다수자로 지칭되는 청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화와 세계를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것을 고려해 차별과 편견 없이 표현한 것이 맞나 싶어 조심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 9월 초반까지만 해도 무관심했고, 알고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내 생각, 느낌, 감정 하나하나를 훑어내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비유하자면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조각 하나씩 따라가 마지막에 과자집을 짜잔- 마주치는 것이 아닌, 길 나서자마자 과자집을 마주친 것 같달까. 심지어 그 과자집이 45층짜리 고층 빌딩이어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달까. 작은 대야에 물 받아서 찰박거리며 혼자 손 장난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끝도 안 보이는 집채만 한 파도가 나를 덮치기 0.0001초 전이라고 해야 할까. 어안이 벙벙하다.


 며칠에 걸쳐 책을 읽었다. 중간중간 휴식이 필요했다. (분명 그들은 존재하고, 내가 모르는 것이겠지만) 내가 ‘알기론’ 아는 사람 중에는 코다가 없다. 나 역시 코다가 아니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울컥울컥 올라올까? 결코 동정심이나 불쌍함이나 짠함이나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코다 모임이 구성되는 과정을 책 밖의 어딘가에서 손에 땀나게 응원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 모습이 내 일, 내 것처럼 뿌듯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은 여러 에피소드에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어떤 지점에서 ‘같다’라는 느낌을 받은 지 잘 모르겠다. 어렴풋하지만 나 역시도 어느 때에는 다수로 정의되고, 어느 때에는 소수로 지칭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가 다수와 소수를 가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수로 분류되어 겪게 된 상황들과 이 책이 맞닿은 것은 아닐까? 책 덮는 순간까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함께 했다.


 매 구절과 단락이 묵직한 한 방으로 다가왔지만, 더욱 강렬하게 남은 몇 구절을 옮겨본다.


(66 ~ 67p)
 이는 철저하게 오디즘(Audism)에 기반한 것이었다. 오디즘은 청각 능력에 기반해 사람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것인데, 농인을 차별하고 농인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려는 행위를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언어적 오디즘은 수어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런 오디즘은 처인 사회가 농인들에게 강요해 온 세계관이다. 구화주의를 주입받고 성장한 농인들은 오디즘에 노출된 만큼 자신의 상태를 그저 결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증명해야 하는지 배울 기회가 없던 이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농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 오디즘을 따르며 그것을 ‘예의’라 불렀다. 부모님에게 수어를 사용하지 않고 음성언어로 말하거나 여러 명이 있는데서 부모님을 뺀 채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소리에 대한 예의를 지킬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밥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 것,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그릇을 내려놓는 것,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 농인이라면 인지하기 어려운 감각에 대해 끝없이 주의할 것을 강요했다.


(95p)
 한국 사회의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를 바탕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이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 취급되고, 그 범주에 장애인도 포함됐다. 결국 다양성이 공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농인은 취약층이 된다. 대물림되는 가난과 농인 가족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 속에서 코다가 코다로서 서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코다를 보듬기 위해 농부모가 갖고 있는 자원은 전무하다.


유튜브 채널 ‘프란(PRAN)’ / 프란의 ‘PRAN PICK’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소개한 영상.

 책을 읽고 조금 더 찾아봤다. 유튜브 채널 ‘프란(PRAN)’에서도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소개했다. 지은이가 직접 ‘코다’와 책에 대해 소개해주고, 실제 코다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짤막하게 나온다. 다른 유튜버의 ‘농인 부모님과 청인 코다 자녀의 일상 브이로그’ 콘텐츠도 들여다봤다. 다르다는 것이 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소하게도 느껴졌다. 우리 가족과는 다를 것 없으면서도 다르기도 했다. 그저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었다. 청인이든, 농인이든, 코다이든 속한 세계가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싶었다.


 언젠가 농인 4명과 청인 수어 통역사 1명과 기본적인 인사도 몰랐고, 농인과 대화하면서도 수어 통역사를 보고 있었던 나까지 여섯 명이서 만났던 적이 있다.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만남이었다. 만나는 시간 동안 제1 언어는 수어였고, 공유하는 문화는 농문화였다. 낯설고 어색하고 혹시라도 나에게 말을 걸까 봐(고백하건대 수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마땅히 대답도 못 할 것이 뻔하다 생각해서 제발 나에게 말 걸지 말아 달라고 생각했다.) 허둥지둥, 좌불안석이었다. 수어 통역사 선생님이 음료를 가지러,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비운 그 찰나가 왜 그렇게 길었는지. 스스로가 보잘것없고, 무능하게만 느껴졌다. 수어를 배우고 농문화를 접하며 다시금 돌이켜보면 청인의 문화에 농인의 문화를 맞추려는 사회도, 한국어에 한국 수어를 맞추려는 무언의 압력도 다를 바 없겠구나 싶다.


 동시에,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그때의 내 무례함을 사과하고 싶다.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인데 음성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말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는 음성 언어와 수어를 모두 하는 농인이 있었음에도 내내 수어 통역사 선생님만 봤다. 농인과 청인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여겼다. 동등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지우려고 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다음 게시글을 올릴 때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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