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의에서 병을 말하다
희귀병 판정을 받은 해인 2015년도부터 2018년 여름까지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적으려고 노력했다. 당장 졸려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날에도 나는 절대 일기장 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 졸려서 이만 잠. -XX月 XX日’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한 줄이라도 쓸려고 펜을 잡았다. 마음에 천둥 번개가 쏟아지던 날에는 이를 악 물고 한 자 한 자를 눈물 젖은 잉크 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세겼다. ‘XX月 XX日 죽을 뻔함.’, ‘XX月 XX日 진짜 죽고 싶다.’ 기분 좋았던 느낌을 썼던 일기장은 어느새 부정적인 어휘들로 가득했다. 재밌는 일은 없고 놀라울 정도로 최악만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 나는 곧 회의감을 느꼈다.
왜 내 하루에는 힘들다, 피곤하다와 같이 한정된 단어들 밖에 소모되지 않을까?
일기를 쓰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느낌을 주었던 일기는 점점 감정 쓰레기통으로 변해갔다. '어제도 아무 것도 한게 없다고 썼는 데, 오늘도 뭐 한게 없어.' 페이지는 점점 빈 칸이 늘어나고 날짜는 하루를 건너 뛰다 일주일을, 한 달을 넘겼다. 이대로는 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릴까 나는 동네 책방에서 하는 글쓰기 강의를 찾았다. 연희 책방에서 기획하는 ‘좀 살아본 언니의 콘텐츠가 되는 글쓰기 특강’은 23년 경력 방송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이었다.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면 글을 좀 더 체계적으로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서울 마포구로 향했다.
도착한 건물 앞에는 블로그에서 봤던 사진과 달리 지하 1층 연희 책방 표지판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차 안에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자동차 시계가 10시 50분을 표시하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로 내려갔다. 서점 안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캠핑장 느낌의 인테리어를 가진 독립 책방이었다. 처음 강의를 들었던 장소보다 큰 규모에 만족스러웠다. 책방 한가운데에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었고, 상석에는 3, 4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나보다 미리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던 분은 풍성한 고동색 머리카락과 새빨간 입술이 옆집 아주머니 같은 만화 캐릭터를 방방케 했다. 학부모 상담회에서 한 번쯤 볼 만한 익숙한 얼굴에 나는 그 분이 작가님일 거라는 상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오신 분은 프린트물을 정리하더니 “자, 다 왔으니 시작합시다.”라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는 그때서야 그 분이 작가님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작가님은 방송 작가라는 직업과 그에 대한 질문을 간단히 설명하고 종이를 돌리셨다. 저마다 받은 A4용지에는 '글쓰기 강의 1차시'라고 제목이 적혀있었다. 페이지를 한장 펼치니, '글을 쓰는 이유', '강의를 통해 얻어 가고 싶은 점', '좋아하는 책 장르' 등등을 적는 난이 있었다. “이거 이따가 다 걷어갈 거니까 위에다가 이름 좀 적어주세요. 불리고 싶은 닉네임도 괜찮아요.” 작가님에게 제출한다는 소리에 나는 머리가 새하애졌다. ‘잘 써야 될 텐데. 첫 인상이 중요해. 글 쓰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라...’ 보기 좋은 단어들을 고르다 이어지는 작가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정신줄을 놓았다. "아, 그리고 이 프린트 이따가 자기소개랑 같이 발표할 거예요."
독립출판물 강의에서 한 번 자기 발표 시간을 가진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때 있었던 일들을 교훈 삼아 난 머릿속으로 할 말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나는 차마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사람과 사람 사이인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 이름은 곽시우고요,” 한숨을 고른 뒤, 말을 내뱉었다. “18살입니다.” 모두들 깜짝 놀란 듯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도 많아 봐야 스무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멋있네요. 나는 이 나이때 뭐를 했는지.." 작가님도 내 나이를 알고 그저 어린 학생이 아닌 동등한 위치의 어른처럼 나를 반겨주셨다. 나는 그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저는 희귀병이 있어서요.”
그리고 다음 말을 천천히 꺼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오늘 몇 시 몇 분에 어떤 증세를 보였는지, 그런데 일기장에 점차 아프다, 힘들다 밖에 쓸거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글쓰기 강의를 통해 좀 더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순간에 주변의 공기가 침울해졌다. 작가님은 숙연해진 분위기를 애써 풀어보려고 했지만 '어린 나이에 희귀병이라니...안타깝다.'라는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앞에 앉아있었던 분은 나에게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네...”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셨다. 내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사람들도 이어서 자신들의 응어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저는 1개월 전에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상태인데 그걸 기록하기 위해 왔어요." 내 옆에 앉아 있었던 분이 이어서 말을 꺼냈다. "저는 고등학생 때 래퍼로 활동했었어요." 이십 대 여성분이 환하게 웃으며 고백했다. 자기 소개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꺼낼 때마다 그들이 살아온 날들의 단면을 들춰보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의 환한 미소랄까, 부끄럽지만 당당한 말투나 신기한 제스처가 이 사람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 지를 알 수있었다.
처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투병 사실을 실토했다. 오늘만 보고 다시 안 볼 사람들도 아닌데, 난 왜 내 희귀병 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토로했는 지 모르겠다. 나는 단 한번도 내 병에 대해 상담선생님과 말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내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반응할 친구들의 얼굴이 상상한 것과 다를까봐 무서웠다. '나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애한테 얘기해서 괜한 오해만 생기면 어떡하지? 겉으로는 울면서 속으로는 불쌍하다며 귀찮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원래 너 싫었는 데 잘됐다라고 비웃으면?'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희귀병을 가진 나는 내 병이 곧 나의 치부이자 절대 들켜선 안 되는 약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남김 없이 털어놓자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오히려 남에게 털어놓은 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 이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게 아니었는 데. 뭔가 좀 더 내가 상처받을 만한... ' 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준 그들은 발표 시간이 끝나고서도 희귀병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었다. 나도 내가 제일 힘들다며 내 처지를 불평하거나 오열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랬구나' 하며 삶이 흘러가듯이 자기 소개 시간도 그렇게 지나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의가 끝이 나고 나는 기쁨을 가득 담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처음이었다. 내가 나로서 인정받은 순간은.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다. 이상한 괴물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엄마 차에 올라 타 책방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얘기했다. 뜨거운 햇살이 에어컨 바람과 함께 맞물려 왔다.
“엄마, 있잖아 오늘 말이야... 너무 행복한 경험을 했어.”
사람들이 처음으로 희귀병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받아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