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학부모 모임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가끔씩 엄마는 가족 모임이나 학부모모임에서 예전 친구들과 사촌언니 오빠들의 소식을 가져왔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꼭 나에게 말을 전했는데, "같은 반이었던 누구는 어느학교에 들어갔고 누구는 어떻데."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탐탁지 않았다. 나도 '그렇구나'하며 넘기면 됐지만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나보고 다시 학교에 가라고 하는 건가? 대학 안 간다고 해서 나를 자극하는 건가?'하며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화를 참으려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계속 내 성질을 돋우었다. "시우도 아프지만 않았으면 이런건 껌이었을 텐데. 그렇지?" 엄마는 내가 병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게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 같다.
병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나는 참다못해 짜증내면서 소리쳤다. "왜 아프지 않았다면이라고 가정하지? 왜 친구들과 나를 비교를 하지? 아니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왜 꺼내냐구? 내가 엄마한테 친구 엄마는 의사고 누구 엄마는 교수님이래 하면서 비교하면 좋겠어? 그리고 걔들과 나는 이미 다른 선상에 놓여있다니까? 걔네들은 병이 없잖아. 나는 있고. 엄마가 자꾸 그러면 내가 병때문에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내가 버럭 화를 내자 엄마는 시무룩해지면서 말했다. "아니 그냥, 네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얘기한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래?" 엄마는 내가 마치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얘기했다.
그렇지. 열등감이 왜 없을까? 나는 병이 없는 모든 사람이 부럽다. 이 고통을 겪지 않는 엄마도 부럽고, 아빠도 ,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부럽다. 하지만 부러움은 곧 질투심으로 바뀌면서 이중적인 사고를 만들었다. '나는 병이 있으니까. 나는 남들보다 못한 존재야.' 5년전의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희귀병을 가진 나를 두개의 의미로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병이 있으니까. 나는 특별해.' 희귀병은 나를 불가촉천민으로 만들었다가 브라만으로 만들어 줬다. '평범한 사람은 병이 없으니까, 내가 더 힘들고 아파. 더 아프다는 게 좋은 건가? 아프다는 게 뭐길래? 하지만 그들보다 내가 불행한 건 맞잖아. 그게 슬픈거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데 왜 나는 비교하면 안되지?' 나는 한동안 이런 딜레마에 빠졌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아프다는 사실에 속상해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들보다 아프다는 엉뚱한 우월감에 취해있었다.
나는 불행 배틀 속에서 이기고 지는 싸움을 계속했다.
저녁을 먹고 있던 때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유니세프 소식지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굶잖아. 그에 비하면 우리는 천국이지.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돼." 엄마의 말에 동의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아이들에 비해 안락한 집도 있고, 먹을 양식도 있고, 크게 부족할 게 없는 삶을 누렸다. 그러면서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때처럼 개발 도상국의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의식주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저 아이들보다는 내 경우가 낫지."
그런데 문득 그런 아이들과 나를 비교를 하면서 내가 더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게 아니꼬웠다. 난 왜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던걸까. 그 아이들은 과연 나보다 불행할까? 먹을 게 없다고, 집이 없다고 불행한 걸까? 내가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저 아이들도 나처럼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함부로 가엾게 여겼다는 게 구역질났다. 그 아이들과 내 상황이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딱하게 여기는 시선과 내가 그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이 똑같았다.
나는 비로소 슬픔에는 무게가 없다는 걸 몸소 체득했다. 남들과 아무리 경쟁을 하며 순위를 매겼지만, 아픔만큼은 경중이 없었다.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다 다르게 겪는다는 말이 기억났다. 어떤 구절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생각한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문장은 한동안 내 모토가 되었다. '같은 고통이라도 누군가는 바늘에 따끔하는 정도로 아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체중을 재는 것처럼 무게가 나오지 않는다. 아프면 아픈 것일 뿐, 그게 다였다.
내가 어떤 이의 불행에 위안을 받고, 때로는 우월감을 느껴도 내 고통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내 상황을 다른 누군가와 저울질하며 내가 더 낫다 아니면 내가 더 못하다며 쟀지만 실상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힘들고 아프다는 진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남들과 비교할 수록 내가 처한 상황이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내게 병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아프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이가 불우하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 단순한 진실을 3년이 지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아이들보다 내 처지가 조금 더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생각은 한동안 변하지 않을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 들려오는 친구들의 대학 합격 소식에 부러웠으나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이 슬프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배가 아프긴 했지만. 엄마 말대로 병이 없었으면 나는 계속 학교를 다녔을 것이고, 대학에 진학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르다. 대학이 곧 행복도 아니고, 내가 나중에 대학에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건 아마 살아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우리를 성적으로, 대학으로, 혹은 돈으로 누군가와 끈임없이 견주고 있다. 그러나 이기든 지든 우리 모두의존재는 소중하다. 모든 사람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니 한번쯤은 경쟁 위에서 내려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 차근차근히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경쟁따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행복도 순위를 매길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