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나야?

:책 <죽음과 죽어감>을 읽고

by 오뉴월의 뉸슬

한번도 얘기해보지 않았던 남자아이가 나한테 갑자기 말을 걸었다. "혹시 나한테서 담배 냄새 나?" 당황스러웠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나는데?" 그 애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 건지 말을 계속했다. "내가 담배를 사서 피운 게 아니라, 아는 형이 사서 같이 피우는 거야." 그 애가 담배를 피우든 술을 마시든 관심 없었던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 응..." 그 애는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다닐 것 같던 지 나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학생'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니 깜짝 놀랬다.


자유로운 삶이 부러웠던 감정은 곧 시기 질투로 바뀌었다. '쟤는 담배도 피우고 술도 몰래 마신다는데 왜 나보다 건강하지? 나는 담배는 물론 술도 안 마시는 데 말이야.' 그애는 학교를 자주 빠지는 나와 달리 성적도 좋았고 친구 관계도 좋았다. TV 뉴스를 봐도 똑같았다. 살인, 성폭행같은 중범죄를 저질르는 사람들이 낮은 형량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저런 사람들도 몇 년만 지나면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말이야.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기약이 없는 나의 처지가 범죄자들의 삶보다 못하다는게 분했다.


책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는 시한부 환자가 겪는 반응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5단계로 나눴다. 첫번째 단계인 부정과 고립에서는 "아니, 사실이 아니야.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 반응은 머지 않아 두번째 단계인 분노와 광기, 시기, 원한의 감정으로 채워진다. 이 시기 환자는 어디를 보아도 불만스러울 뿐이다. TV에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오면, 모든 움직임이 제한되어있는 환자에게는 짜증을 유발한다. 환자는 환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비교를 하는데, 이는 곧 "왜 하필 나야?"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인터뷰한 환자 중 한명인 G박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왜 저 사람이 아니고 나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알던 노인을 우연히 만났습니다.여든 두살이고, 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같았어요. 류머티즘 환자에, 장애인이고, 불결하고,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 군요. 왜 나 대신 저 늙은 조지 영감이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번번이 이러한 미궁 속에 빠졌다. "왜 나일까? 왜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나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나? 무한개의 별중에 왜 하필 이 푸르른 지구였고, 239개 국가 가운데 왜 하필 대한민국이며, 5천만명의 사람들 중에 하필 여기 서울시이며, 많은 학생들 중 왜 하필 나 였을까? 그리고 30명의 같은 반 학생들 중에 왜 하필이면 나지? 왜? 무슨 이유로? 왜 하필 나를 향했냐고!"



7/13.


죽고싶다…

미친듯이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아프기 싫어

아프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어

그냥 지금 당장


어차피 내일 또 아플 거

죽었으면 좋겠어

내가



운명을 탓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 나는 내가 잘못한 일들을 떠올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 죄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어렸을 적에 메추리알을 부화시키려다 모조리 죽인 죄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실수로 밟아 죽인 개미들의 원한일지도 모르겠다. 이럴수가, 너무 많은 데.' 나의 죄목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늘어났다.


어쩔때에는 내 존재 자체가 죄 같았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만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린다면 어떨까.'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비난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희생양을 나로 정해 내가 다 못나서, 내가 다 나빠서라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편할 줄 알았던 자기비하는 자존감을 극도로 떨어뜨려 나를 혐오하는 지경까지 갔다. '차라리 영화 <오멘>처럼 666표식을 지닌 악마의 자식이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10대에 난치병은 좀 심하잖아. 하긴, 태초부터 그랬어 세상은 불공평해.'


나는 '희귀병'이라는 주홍글씨라 생각했다.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수 없는 심장 깊숙이 세긴 죄라고 생각했다.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 은 필자가 시한부 환자 5백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낸 저서이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뉴욕 시카고 등지의 병원에서 시한부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곤 했다. 그는 동료 의료진이 환자의 심박 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앞장서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세미나를 열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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