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고 싶은 게 뭐야?

by 오뉴월의 뉸슬


핫도그집에서 간단한 야식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가 물었다.


"너는 꿈이 뭐야? 하고 싶은 거."


그 아이는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자신의 꿈을 먼저 얘기했다. "나는 약대를 졸업하고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 너는?" 신기하게 나도 내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약사가 되고 싶었다. 이런. 둘 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원하는 목표도 같다는 건 우연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애에게 "아직 찾고 있는 중이야."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혹여나 친구의 꿈을 따라한다 생각할까봐 일부러 대답을 회피했다. '낮은 언덕길조차 조금만 천천히 걷자고 부탁하는 내가 약사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 말해.' 그 애가 내 병을 치료할 유일한 희망을 무시할까봐 두려웠다. 그 애는 공부도 잘했고 모범생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프다고 학교도 잘 안 나가면서 무슨.' 순식간에 약학자라는 꿈은 산산조각났다. 현실 감각이 돋아났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내 꿈은 식물학자, 생명공학자 같은 과학자였다. 1,2학년때부터 멋도 모르고 과학자가 멋있어 보여서 장래희망 칸에 '과학자'라고 썼던게 기억났다. 10살의 나는 과학 시간에 실험하는 게 재밌었고, 화단에 놓은 이름 모를 풀꽃들을 좋아했다. 단순히 과학 교과 과목이 좋아서 과학자를 꿈꿨는데,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무렵 꿈이 바뀌어버렸다. SKY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멘토로 학교에 찾아 왔던 방학 기간이었다. 우리 모둠을 담당하셨던 분은 약대생이었는데, 내가 식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학과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 분은 약초의 판화를 보여주면서 식물의 이름을 다 외워야된다고 했다. 나는 그 그림을 본 후 약학자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약학자가 되고 싶어진 건 중학교 2학년 희귀병 진단을 받고 부터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약을 정리하거나 무료하게 약국 한가운데 앉아 시간을 보내는 약사도 나쁘지 않겠다고 상상했다. 약사가 되려면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지 약학 관련 서적을 사서 보기도 했다. '내가 약사가 되서 폐동맥고혈압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도 봐야 하고, 대학을 6년동안이나 다녀야 했다. 또, 신약을 개발할려면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 즉 머니가 있어야 됐다. 대학을 6년이나 다녀야 된다는 것부터 나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난 여름 나는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나는 무얼 하고 싶지? ' 곰곰히 궁리해보니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저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SKY대를 나와서 연구하는 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제약회사를 다니는 엄마를 둔 한 친구는 신약개발은 힘들고 지루한 과정의 반복이라고 말해줬다. 순간 흥미가 사라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반드시 나의 직업 앞에 '좋은 대학을 나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야 했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뭘까? 사람들의 시선과 타이틀을 신경쓰지 않은 채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지금은 떨어져 나가고 없는 쪽지지만, 8살 무렵에 짧은 글귀를 썼던 기억이 있었다. 엄마는 어린애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기특해 흰 냉장고 문에 테이프로 오랫동안 고정해 놓았다. 학교에서 '바람'이란 단어를 활용해서 문장을 만들었다. 바람과 바램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배웠다. (무엇을 바라다 할 때는 바람, 색이 변하다 할 때는 바램이다.) 나는 노란 포스트잇에다가 '나의 바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것이다.'라고 썼다. 어쩌면 그때의 바람을 계속 이어나가는 건 어떨까. 내가 원하는 것은 넓은 지구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 세상을 좀먹는 해충이 되지 않는 아주 간단한 소망이었다.


나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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