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얻은 한가지

하고 싶은 걸 찾음

by 오뉴월의 뉸슬

학교에도 학원에도 가지 않았던 나는 매일을 무료하게 집에서 보냈다. 하루에도 텔레비전과 핸드폰을 몇시간씩 들여다 본 나는 '이건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책이나 읽을까하며 소설책을 펼치면 10분도 안돼 싫증나서 관두고, 공부를 할까하며 자습서를 펼치면 단 몇분 만에 책을 덮었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도 학원에서처럼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내가 약학대에 갈 수 있을까?' 약사라는 꿈을 이루려면 고등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대학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병이 악화되면서 나는 정상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약사의 꿈이라는 등대가 꺼져버렸다. 나는 마치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아 있는 듯 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가 어느 하나 선택해서 주체적으로 살아온 날이 없었다. 돌아보니, 학교는 당연히 부모님이 보내줘서 갔었고, 학원도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다녔었다. 나는 엄마가 선행학습 시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저녁 10시까지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풀며 살았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대학에 잘 갈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누가 봐도 우리가 걷고 있던 그 길이 가장 넓고 안전하고, 목적지가 잘 보였다.


그렇게 고등학교-대학교-직장-결혼같이 정해진 루트대로만 살다가, 그만 중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이제부터 나는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 나는 중간고사처럼 내가 직접 문제도 내고 답안지도 작성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나 어른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했을 뿐, 그 외의 길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대학과 목표가 사라진 지점에서 나는 수 없이 많고 좁은 갈래길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 틈으로 나오게 된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길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 고민하며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 dnevozhai, 출처 Unsplash


오고 갈 데 없는 길냥이처럼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되는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몰랐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던 나는 공부도 노는 것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많은 신체 활동이 필요하지 않고,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했던 걸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무엇을 하기 좋아했을까? 나는 뭘 잘했지?' 우연히 책상 옆 책장 위에 놓인 학교 글쓰기 대회에서 받은 장원 상장이 보였다. '그래, 나는 글쓰는 것을 좋아했었지.'


한 번 내 병에 관해 짧은 글을 쓴 다음부터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갔다. 짧고 단순한 시였지만, 나도 무언가를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분야가 그렇듯이, 예술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누구나 선호하는 곧게 쭉 뻗은 길과 달리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였다. 내 길은 군데군데 고난과 역경이 드리워져 있었고, 불확실한 미래만 보였다. '이 길이 과연 내게 알맞는 길일까?' 걷고 있으면서도 불안했다. 어느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일전, 카페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럽다." 병이 있다는 게 부럽다라고 말하는 줄 알았던 나는 상처 받으려다 계속 이어지는 말을 듣고 오해를 풀었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았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고 있잖아. 그게 참 부러우면서 멋있어. 나는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갈건데 무슨 과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어." 진심어린 친구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걸 비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럽다니, 내가 누구한테 부러울만한 사람이 되었다니 이상했다. 나는 책을 내지도 못했고, 글에 대한 확신도 없었는데 내가 그 길을 당당히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우울해하는 수지(가명)에게 내가 "너는 하고 싶은 거 있어?"하며 물어봤다. 길어지는 침묵에 나는 재빨리 직업이 아니라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거나 해보고 싶은 아무거나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자신은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수지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며 한발자국 뒷걸음 쳤지만, 연기라고 밝혔을 때 그녀의 환한 표정이 그녀의 속마음을 말해주는것 같았다. '나도 글 쓴다고 말할 때 이런 표정이었나.' 수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한 번 연기 학원에 가보는 건 어때?" 연기라는 꿈을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았으면 해서 나는 수지에게 대학을 가서도 늦지 않으니 나중에 연기 학원에 등록해서 배워보라고 권했다.


난 이제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병으로 얻은 것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병이 나의 내면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


1. 나는 원래 약사가 되서 30,40대에 책을 쓰려고 했다. 그러니까 이미 출판은 내 목표 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피피티로 인생 계획을 짜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나는 내가 직접 집 지어서 인테리어 하기, 책 내기, 정원 만들기 같은 꿈들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많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하나씩 지우고 잊어버렸지만, 다시 들춰본 내 꿈들은 찬란했다. 나는 어린 시절 꿈들을 이용해서 현재 내 목표로 만들었다.


2.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걸 잘하는 지, 못하는 지, 재밌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글쓰기 모임 이외에도 나는 수채화 수업, 독립 출판물 수업, 그림 기초 수업 등을 찾아서 들었다. 직접 다른 사람들과 배우니까 재미도 있고 실력도 나아졌다. 자신의 취향대로 퍼즐 게임 모임, 요리 모임, 독서 모임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직접 참여하는 사이트에는 트레바리, 문토가 있고, 클래스 101은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사이트다.


https://trevari.co.kr/about


https://www.munto.kr


https://class10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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