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by 오뉴월의 뉸슬

7교시 체육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마지막 교시 시간이니 피구를 하자며 제안했다. 선생님은 하고 싶은 사람은 운동장에 있고, 안할 사람은 계단에서 쉬라고 얘기했다.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 너도 나도 할것 없이 계단으로 몰렸다. 상당수가 계단으로 가자 체육선생님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눈치가 보였지만 나도 슬그머니 계단으로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별안간 나를 불렀다. "너는 또 왜?" 선생님은 나를 탐탁지 않게 보더니 투명스럽게 물었다. '아니, 다른 애들은 다 갔는데 왜 나만 가지고 야단이야.' 예기치 않게 선생님의 제물이 된 난 나는 될 수 있는 한 표정 변화 없이 무뚝뚝하게 답변했다.



"병이 있어서요."



"무슨 병이 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병명을 대라고 하면 우물쭈물하며 곤란해 할 것 같았나 보다. 선생님은 내가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폐동맥 고혈압이요." 나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게 '그럴듯한' 병명을 대자, 선생님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선생님은 내가 즉석에서 '그럴 듯한' 병을 지어낸 것 같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병을 그저 말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나에게 그럼 진단서를 가져올 수 있냐며 묻더니, 내가 자신있게 대답해자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병명까지 말했는데 믿지 못하다니. 내가 사실(병명)을 말해도 의심쩍게 본 사람들이 덩어리채로 생각나면서 분통이 터졌다.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지?' 나를 마치 물건 훔치다 들켜서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구는 선생님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또다. 이번에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병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의심한다. 내가 학교도 (잘은 아니지만) 나가고 있고, 아픈 티를 내지 않으니까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인 것 까지는 이해할을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람의 병환 상태에 별로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병이 있는 걸 안다. 그런데도 그들은 희귀병이 있다면 연약해보여야 하고, 죽을 것처럼 시름시름 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나는 내가 기침이라도 해야 될 것 같고, 일부러 힘든 척해야 내 병을 이해해줄 것 같아 기가 죽었다.



3/18

웃으면 아프다

아이러니하다

왜 웃으면 아플까?

살짝 웃는 미소 정도가 아니다

정말 너무 웃겨서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고 즐거울 때

웃으면,

아프다.


아파서 더 슬프다

괴롭고 힘들고 더 아프다

아픈 게,

몸이 힘들고 아픈 게 죽는 거 보다 더 싫은 나는

두렵다

이대로 나의 웃음을 아픔에게 빼앗길 까봐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는다

가슴이 아프고

폐가 찢어질 것 같고

숨 쉬는 게 힘들어도

나는 웃는다


어쩌면

웃어서 아픈 게 아니라

아프니까 웃는게 아닐까?


정말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나는 오늘도 아파서 웃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내 병은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쉽상이었다. 내가 병이 있다고 얘기해도 사람들은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너는 아픈데 어떻게 학교에 다녀? 너는 왜 멀쩡해? 너는 왜 환자 같지 않아?" 나를 훑어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생각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심장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이것 참, 쉽지 않다.), 심장과 폐는 몸 안에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엑스레이나 초음파 같은 검사를 하지 않고는 볼 수가 없다. 우리 눈은 X-ray가 아니니 폐혈관이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주변인들은 내가 거짓으로 아프다고 말하는 줄로 알아들었다. 아픈 게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닌데, 왜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을까.


병명을 얘기해도 내 병을 알아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폐동맥 고혈압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선생님이나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과학 교과 담당이셨던 담임선생님은 내 병명을 듣고 '그게 뭐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처음에 내 병명을 들었을 때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과학 선생님이니까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나는 매번 똑같이 되돌아오는 질문이 지겨워졌다. 폐동맥 고혈압이 뭔지 궁금했던 그들은 나에게 딱 한 번 물어보는 것이었을테지만, 나는 그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에 수도 없이 대답해야 했다.


폐동맥 고혈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게 귀찮았던 나는 에둘러서 심장병이라고 하거나 호흡기 쪽이 약하다고 말하곤 했다. 폐고혈압이라고 정확한 명칭을 말하는 것보다 심장병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병'인줄 알고 심각하게 바라봤다. (덕분에 나도 편했다) 폐고혈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병은 '병'이 아니었다. 병을 물어볼때마다 귀찮아서 심장병이라고 답한 나는 마음이 찔렸다. 폐병이라고 말하려니 페트병이랑 발음이 비슷해서 심장병이라고 말한 건데,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을 속이게 된 셈이 되버렸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내가 그런 반응을 걱정하자, 폐동맥은 폐와 심장을 연결하면서 우심실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니까 심장병도 맞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체육시간에도,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시간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각은 우리의 생활에서 80%를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전이 발생하면 촛불을 켜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볼때 우리는 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0.05초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저자 헬렌 켈러는 앞을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무엇을 보는 지 물어보면 "특별히 없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헬렌켈러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숲 속을 거닐기만 해도 자작나무의 매끄러운 껍질, 소나무의 거칠고 껄끄러운 껍질과 꽃잎의 섬세한 벨벳 같은 감촉을 느끼고 운이 좋을 때는 노래하는 새의 떨림이 나무에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라고 말하며 실망해했다. 우리는 어쩌면 가진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무심코 바라보던 것들을 새롭게 느껴보면서 눈을 통해 보는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 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는 없을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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