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고등학생이 된 나는 친구들이 대학 입시 준비에 들어가면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중학교 3학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1년 만에 만난 그들의 모습은 중학교 시절과 똑같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에게 점직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코엑스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 한 친구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명을 얘기했다. 뿔뿔이 다른 학교로 흩어졌던 우리는 각자의 고등학교 생활이 궁금했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나는 우물쭈물하며 "몸이 안 좋아져서 학교를 못 가고 집에서 공부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아픈 걸 알고 있던 친구들은 검정고시를 볼꺼냐면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내 소식을 궁금해한다고 한다. 나는 학교 이야기가 계속되는 게 불편해 어색하게 대화 주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에서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중간고사 시험은 어땠는지 물어보며 나는 낄 수 없는 대화를 했다. 순간 중3때 교실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때도 공부나 학원 진도 얘기를 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던 나는 그 속에서 철처히 외면되고 소외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비슷했다. 학교를 안 가니 반 친구같은 건 없었고, 학원도 다니지 않으니 수학 진도같은 건 몰랐다.
소란스러운 교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하며 의문이 들었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주위에 모두 조용히 수업 듣는 모습이 나만 외로이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데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야.' 쉬는 시간만 되면 내가 '학생'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해줬다. 친구들은 항상 1교시에 본 수행평가나 문제 풀이 정답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그런 '학생다운' 말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들은 찬란한 '미래'가 반드시 올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내가 살아있는 '미래'조차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다.
하루는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에 간 날이었다. 종이를 펼치자 학교 이름과 학년을 쓰는 칸이 보였다. 연필을 든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학교를 제대로 안 다니고 있는데 써도 되나?' 적을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내가 다니던 학교 이름을 썼다. 나는 분명 학교에 재학중이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생, 대학생, 직장인 중 직업을 고르라면 분명 학생이었지만,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는 내가 '학생'이라고 말해도 되는 지 확신이 없었다. 나는 왜 학생이라 소개될 때 불편함을 느꼈을까?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내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장애인은 아니었던 나는 그들에게 이방인이었다. 나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시한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생사를 오가는 위중한 환자도 아니었다. 그 모호한 선 위에서 길을 잃었다. 하지만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를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고,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나를 그저 학생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두가지의 교집합 속에 포함되는 것일까?
책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에서 마야안젤루는 "속하지 않는다고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디에나 속한다고 느끼죠."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그 방송을 보고 절대 동의 할 수 없다며 '진정한 소속감은 자기 자신을 굳게 믿고 자기 자신에게 속함으로서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을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황야에 홀로 서는 것에서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정신적 체험이다. 진정한 소속감은 자기 자신을 바꾸길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길 요구한다.'라고 반박했다.
나는 두사람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아들인 소속감은 여행과 같다. 여행을 떠나면 언어도 풍경도 달라지며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여행은 더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 나쁜 게 아닐 수 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 오랜 기간동안 머무르다 보면 자연스레 고향 한국이 생각난다. 평소 잘 먹지도 않던 신김치가 그리워지고, 따뜻한 집밥과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고, 한국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리면 웬지 모르게 반가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하고 싶었던 걸까? 이방인이란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외국으로 여행을 갈 수도 없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란 분포에 들어가고 싶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마법처럼 병이 낫지 않는 이상 나는 환자도 시한부도 아닌 그 애매한 구분선을 지우기 어렵다. 증세가 악화된 후, 병원에 입원을 장기적으로 하게 되면서 나는 그들에게 '환자'라는 군에 속하게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분명 나는 소속감을 원했다. 하지만 들어가고 나니 의미가 없어졌다. 소속감이란 없으면 불편한 전자제품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소속이 주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