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by 오뉴월의 뉸슬

2주만에 학교에 갔던 날이었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출발했던 나는 지각할까봐 마음이 급해졌다. 양재천 뒷길로 달린 차는 교문을 코앞에 두고 정차했다. '악, 15분 남았어!'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잘 갔다 오라는 엄마의 인사를 뒤로 한 뒤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니 어떤 선생님이 앞차에서 내린 학생을 꾸짖고 있었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차에 다시 탈까하고 뒤돌았으나, 차는 이미 떠나가버렸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선생님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더니 "거기, 너."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이름."


'망했다.'


“곽시우요.”


선생님은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본 뒤 내 이름을 적었다. 한번도 벌점을 받아본 적 없었던 나는 실망을 금치 못하며 속상해했다. '학교 잘 다닐 때도 벌점 받은 적 없는데 왜 하필 내가 오랜만에 나올 때에 받아버린 걸까. 나는 차를 타고 학교 오는 게 규정에 어긋난 건지 처음 알았는데. 이 선생님은 내가 아프다는 걸 알까? 알리가 없지. 걸어서 학교를 등교하기 힘들다면 믿어주실까?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들어주실까? 아, 이럴 거면 학교에 오지 않은 거였는데.' 저 멀리 보이는 학교 교문이 바늘구멍처럼 작게만 느껴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학교를 가기가 더 싫어졌다. '서럽군 서러워. 어디 몸 불편한 사람은 학교도 가지 말라는 건가?' 물론 학교 측의 의도는 아주 잘 알겠다. 등교시간만 되면 교문 앞에 차들이 줄지어 서있는 게 보기 좋지 않아서 규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이 차를 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는 그런 친구들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존재하는 지도 몰랐겠지. 얘기를 해도 소용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무력해졌다.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한 친구들은 버리겠다는 말인가? 학교만이라도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되는 것 아닌가?'


나는 항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에다가 이야기해본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왜 굳이 문제를 일으켜'라는 시선이 무서웠다. 몸이 불편해 보이지도 않는 데 대우 받는다고 친구들이 나쁘게 생각할 것 같기도 했고, 얘가 그냥 유난떠는 것이라며 학교 측에서 내 이야기를 무시하는 게 더 겁났다. 나 혼자만 처벌을 피하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왜 얘만 특별 대우해주냐면서 얘기가 나오는 것도 싫었다. 선생님들한테만 알린다고 해도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알지도 못한데, 내가 몸이 좋지 않다는 걸 말한다고 해서 벌점을 안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런 이득이 없었던 나는 학교 가는 걸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냥 처음부터 이런 규정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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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이제는 차 타고 학교에 못 간다고 얘기를 하자 엄마는 "그렇다면 차를 타고 학교 안쪽까지 들어가면 되잖아."라고 말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학교 뒷문은 다리가 다쳐서 차를 타고 오는 친구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런 애들에 비해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게 문제였다. 모르는 학생이 나를 쳐다보면서 "네가 왜 거기에서 나오냐?"하며 수상하게 볼까봐 두려웠다. 나는 엄마의 의견을 수렴에 이른 시간에 차를 타고 등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따금 10분 늦게 출발해버려서 학생들이 많이 등교하는 시간인 8시 40분에 들어가버린 날에는 곤욕을 치뤄야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학교 뒷문을 열자 50명쯤 넘는 학생들이 나를 모두 쳐다보는 것이다. 100개의 눈동자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딱총처럼 눈빛을 쏴댔다. 나는 운동화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 내내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평일 아침에, 엄마는 나에게 왜 학교에 가기가 싫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저 "학교에 갈 수 없으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왜 갈 수 없냐고 반문했다. 나는 학교 계단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엄마는 조금 있다 계단을 하나하나씩 천천히 올라가면 되지 않냐며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미없는 언쟁이 슬슬 지겨워진 나는 학교 교문에서 부터 걸어가는 것도 힘든데 계단까지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고, 하나하나씩 천천히 올라갈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왜 천천히 올라갈 수 없는데?" 엄마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대화가 종결될 낌세가 보이지 않자 나는 "그냥 그렇게 올라갈 수 없으니까!"라고 짜증내며 크게 소리쳤다.







학교는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에게 학교 계단은 오를 수 없는 절벽처럼 까마득했다. 매일 아침 힘겹게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리는 경험을 매번해야 했다. 종종 사람이 한적한 시간에는 중간에 털썩 기대 주저앉고 싶기도 했다. ‘계단에 머리 박으면 많이 아플까? 쓰러진 나를 누가 신고해주긴 할까? 늦게 발견해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교실로 걸어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유혹과 생각들이 지나갔다. 지금 당장 쓰러지기에는 주변에 보는 눈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4층 계단을 하나하나 이 악물고 올라가다 보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자리에 선 나는 숨을 골랐다. 심장은 요동치면서 눈앞에 8반 교실 문이 탁하게 보였다. ‘우리 반은 1반인데...’ 한참이나 더 걸어야 하는 거리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휘청거리며 계단 난간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쓰러진 나를 관심도 없이 그냥 지나쳐가면 어떻게? 쓸쓸히 죽어가는 거 아니야? 괜히 큰 소란만 일어날 것 같은데.’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핑 돌는 것 같았다.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두 손으로 간신히 가방끈을 꽉 쥐었다. 뒤엉킨 시야에 내가 어딜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반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tokyo_boy, 출처 Unsplash



나에게 교실 문은 죽어야만 열 수 있었던 지옥의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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