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챕터 뒤에 폰을 켜는 사람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자동조절에 대한 이야기

by 강동민

제주도 동쪽 어느 한적한 좋은 책방에 왔다.


좋은 책을 구매하고, 좋은 커피를 마신다.

이 조합은 늘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만큼은 폰을 잠시 내려놓겠다고 마음먹는다. 작은 선포. 작은 금식.


한 챕터를 읽는다.

책이 내 안의 속도를 낮춰준다. 문장이 느리게 들어오고, 생각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만 또각또각 들린다.

딱 지금만큼은—괜찮다.

내가 나와 같이 있어도.


그런데 손이 움직인다.

정확히는,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는 엄지가 있다.

나는 스마트폰을 깨운다.


알림은 없었다.

누가 나를 부른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를 호출한다.


인스타그램을 연다.

가벼운 소음 같은 뉴스들, 손쉬운 분노를 파는 문장들, 비교를 유도하는 사진들.

손가락은 위로, 위로.

책방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온도가 내 눈 안으로 들어온다.

고요한 공간에서, 내 안만 갑자기 뜨거워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가 싫어진다.


“또야?”

“너 왜 이렇게 못 참아?”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재판장처럼 판결을 내린다.

문장 하나가 책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죄책감 하나가 마음에 눌러앉는다.

커피가 갑자기 쓰게 느껴진다.

나는 ‘좋은 책방에 온 사람’이 아니라,

‘또 무너진 사람’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멈춰보고 싶다. 내가 늘 쉽게 내리던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그 결론은 편하다.

설명이 단순하니까.

단순한 설명은 빠르고, 빠른 설명은 나를 빨리 포기하게 만든다.


상담심리학은 이런 순간에 질문을 바꿔준다.

“의지가 약해서 그랬을까?”가 아니라

“지금 네 마음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결론을 바꿔본다.

내가 정말로 붙들고 싶은 결론은 이것이다.


“나는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불안과 공허를 다루는 방식이 자동으로 굳어졌을 뿐” 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근거는 생각보다 많다.


내게 폰은 ‘오락’이라기보다 ‘조절 도구’에 가깝다.

사람은 불편한 감정 앞에서 자연스럽게 조절을 시도한다.

심심함, 막막함, 외로움, 초조함…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대로 나와 마주하기가 버거움.


책은 나를 나에게 데려온다.

그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겁다.

문장을 읽는다는 건 결국 질문을 읽는 것이고,

질문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내가 피하고 싶은 나를 만나게 되는 일이니까.


반면, 폰은 나를 나에게서 잠시 빼낸다.

생각을 멈추게 하고, 감정을 희석시키고, 침묵을 깨뜨린다.

그러니까 나는 유혹에 진 게 아니라,

잠깐의 진정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 반복은 ‘인격’이 아니라 ‘학습’이다.

나는 몇 번이고 이 길을 걸었다.


조용해지면 폰,

집중하면 폰,

감정이 떠오르면 폰.


뇌는 이렇게 배운다.

“이 버튼을 누르면 잠깐 편해져.”

그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 회로의 문제다.

나를 탓하는 순간 습관은 더 강해진다.

죄책감이 또 다른 불편한 감정이 되고,

불편한 감정은 다시 폰을 부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안에는 이런 목소리도 있다.


“그래도 결국 의지 문제야. 참으면 되잖아.”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말이 전부는 아니다.

참는다는 해법이 늘 작동했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반복해서 무너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의지는 감정이 안정될 때 강해진다.

감정이 요동칠 때 의지만 꺼내는 건,

연료가 없는 차에 “출발!”이라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건 더 강한 채찍이 아니라,

더 정확한 이해와 더 작은 행동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금지’가 아니라 ‘단 한 번의 브레이크’다.


내가 싫은 이유는 폰을 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진짜는 그 다음이다.


폰을 켠 나를 본 순간, 나는 나를 미워한다.

그 미움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그 외로움은 더 많은 스크롤을 요구한다.

나는 스스로를 벌주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이 모순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오늘, 책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거창한 금욕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절대 폰 보지 마”가 아니라, 단 한 번의 멈춤이다.


폰을 켜는 바로 그 순간, 1초만 멈춰서 이렇게 말하는 것.


“아, 지금 내가 뭔가를 피하고 있구나.”

“아, 지금 내 마음이 조절이 필요하구나.“

“괜찮아. 다만, 나는 나를 버리진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진짜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책으로.

한 문장으로.

내 호흡으로.


좋은 책방에 온 이유는,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완벽함 대신 회복을 연습하러 온다.


한 챕터를 읽고 폰을 켜버린 사람.

그런데도 다시 책장을 넘기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을—나를—

오늘만큼은 “실패한 나”가 아니라 “돌아오는 나”로 부르기로 한다.


나는 나를 미워해서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나를 이해할 때, 비로소 바뀐다.”


책방 밖으로 나갈 때,

나는 폰을 완전히 끊지 못해도 좋다.

대신 단 하나는 확실히 들고 나가고 싶다.


나는 자극에 약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중인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끊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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