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과 N 잡러
1. 'N잡러'와 온디맨드(On-Demand)서비스
7~80년대,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가치가 같은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 시기. '돈 = 근로 시간을 투자한 만큼 창출' 공식이 가능.
90년대, IMF 이후 근로소득의 가치가 낮아짐.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가 조금씩 해체
90~00년대, 아직까진 돈을 벌기 위해 '근로', 즉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 기술 부족 역시 노동에 시간을 투자하게 만드는 요소였음.
00~10년대 이후, 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수입창출에 필요한 '시간총량'이 줄어들고, 온디맨드 서비스가 보편화됨.
온디맨드 서비스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형 플랫폼들은 라스트 마일 배송에 일반인을 투입하기 시작.
비교적 업무의 진입장벽이 낮은 '배달'은 N잡러 들의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잡음.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내용 중에, 당시 은행 예적금 금리가 15% 라는 내용이 잠시 나온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공성장을 이어나갈 당시엔 금리 15%도 적어 보일 정도로, 각종 신탁상품은 25~50%까지의 수익률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지만, 7~80년대 당시엔 이러한 고금리로 인해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가치는 같은 그래프를 그리며 상승했었다.
허나 90년대엔 IMF를 거치며 근로소득 대비 자본소득의 가치가 높아졌고, 근로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재화의 생산성이 '시간'과 '인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전보다 근로의 형태는 다양해졌을지언정, 부수입을 창출하기 위해선 인형 눈 붙이기 같은 손 부업이나 신문/우유 배달 등 메인 업무 이외 시간에 진행할 수 있는 부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부업, 투잡은 가정주부나 전문 프리랜서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모바일 등 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소득과 근로시간의 상관관계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부업에 대한 접근성과 선택의 폭이 이전보다 크게 넓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회사보다는 개인(나)을 위해 일하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의 목적도 단순히 생계, 소득 창출만이 아닌 자기 계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세대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들에 힘입어 최근 우리 사회에서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했다.
'N잡' 과 '긱이코노미' 트렌드의 크게 기여를 한 요소로 온디맨드 서비스가 있다. 온디맨드 서비스란 수요자가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맞춰서 제공받는 서비스를 일컫는데, 쉽게 말해 내가 주문한 상품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니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배달'. 가장 전통적인 온디맨드 서비스였던 배달산업은 다양한 배송 플랫폼과 결합하여 더욱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다. 대형 플랫폼들은 이렇듯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온디맨드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별 클라우드 배송(일반인 배송) 망 구축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클라우드 배송은 시간의 제약이나 업무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긱이코노미 트렌드에 맞춰 'N잡러'들의 대세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프로 N잡러들은 과연 물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2. 배송 주체와 수단의 다변화
전통적인 배송 시장은 4륜 화물차와 2륜 오토바이가 주류.
배송 시스템이 전문 배송기사들에 맞춰 발달했기 때문에, 배송 시장의 진입장벽은 꾸준히 높아짐.
플랫폼의 발달로 일반인 배송기사 배송 모델을 채택.
일반인 배송기사가 많아지면서, 배송 주체와 수단이 다변화됨.
배송 어플과 기술이 일반인 배송기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개발되는 방향으로 변화.
전통적인 배송 시장은 꽤나 폐쇄적인 구조였다. 특히 퀵서비스나 음식 배달 등 다소 진입장벽이 낮아 보이는 영역도 막상 업무를 시작해보면 최저시급도 얻기 어렵다는 경험담이 수두룩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기존 배송 시장은 배송을 직업으로 삼는 소위 '프로'들의 바닥이었다. 전문 배송기사들은 동네 좁은 골목길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한번 운행마다 극한의 효율을 끌어올려야 많은 배송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효율' 이란 1회 운행 시 얼마나 많은 건수를 묶어서 가느냐 이다.
사실 퀵이나 음식 배달에서 말하는 실력은 운전 실력보다도 이 코스 짜는 실력을 칭한다. 기본적으로 픽업지와 전달 지는 각각 몰려 있는 것이 좋다. 물론 픽업과 전달을 이어가면서 하는 걸 선호하는 분들도 있으나, 대부분 전자의 코스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어느 쪽이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주문들을 솎아내면서 내 동선과 맞는 주문만 선택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괜찮은 주문은 다른 기사에게도 좋은 주문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기사가 가져가고, 마구잡이로 누르다 보면 동선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생각보다 배달시장은 '신입'들이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었다. 한데, 쿠팡 / 배달의 민족 등 대형 플랫폼들이 일반인을 배송기사로 모집하여 운영을 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배송 시장도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대형 플랫폼 이전 클라우드 배송 모델의 여러 스타트업이 먼저 있었지만 이 얘기는 다음 편에 하겠다.)
우선 배차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 기존에는 퀵/음식 배달할 것 없이 전투콜 방식, 쉽게 말해 선착순 방식의 배차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먼저 선택한 사람이 임자' 라는 방식의 전투콜 배차는 위에 언급했듯이 '신입'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배차 방식이다. 때문에 일반인 배송기사를 모으기 위해선 그들을 위한 당근(수입)이 필요했다.
처음 시도한 방식은 전투콜+우선배차 시스템이었다. 전투콜 방식은 유지하되, 일반인 배송기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주문을 몇 초간 먼저 노출을 시켜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효율이 그리 높은 방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추천콜을 잘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같이 갈만한 주문을 묶지 못한다면 배달 효율이 그리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존 배달기사들의 항의도 많이 존재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데 좋은콜이 일반인 배송기사에게만 배차되니 배달을 생업으로 하는 배송기사들의 항의는 어쩌면 당연했다.
이후엔 AI배차가 개발됐다. AI배차는 시스템이 알고리즘을 통해 기사에게 콜을 넣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코스를 구성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배차는 분명 이제 막 배송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전투콜 방식보다 훨씬 쉽고 편한 방식이었음은 틀림없다. 이와 더불어 내비게이션 기능도 사륜/이륜만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자전거와 도보 경로까지도 안내해주면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배송수단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AI배차는 1시간에 3.3건 , 일반 배차(전투콜)는 2.7건을 수행했다고 한다. 더불어, 실제 배송기사들 사이에서도 콜이 없는 시간엔 AI배차가 낫다는 얘기도 종종 나오니 확실히 이전보다 AI 기술이 많이 발전되고, 반감 또한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이러한 여러 노력들과 마케팅을 통해 지난해 배민커넥트 등록인원은 5만 명을 돌파할 만큼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줬고, 음식 배달 시장은 일반인 배송기사와 전문 배달기사 간의 구분이 점차 무의미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 모빌리티에서는 앞으로 퀵서비스 시장에서도 일반인 배송기사를 모집하여 운영할 것으로 알려져 일반인 배송기사들의 영역은 꾸준히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 'N잡러'들이 바꿀 물류시장의 모습이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