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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비 Jun 05. 2023

우리 괴로움에는 의미가 있어

<헤븐>(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이지수 옮김, 책세상)을 읽고

소설의 화자인 ‘나’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열네 살 소년이다. 나는 저항하지도 달아나지도 못한 채 니노미야 일당의 폭력과 모멸을 무력하게 견딘다. 

‘우리는 한편이야.’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적힌 쪽지를 받는다. 쪽지를 보낸 이는 같은 반 ‘고지마’. 가난하고 더럽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여자아이다. 나는 사시(斜視) 때문에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다고 여기지만 고지마는 내 눈이 좋다고 말한다. 나 또한 고지마의 특별함을 본다.      


“네(고지마) 목소리랑 6B 연필의 심이 아주 비슷해. …… 부드러운데도 진하고 심이 있다는 점이 닮은 것 같아.”     


고지마는 ‘우리’가 겪는 괴로움과 슬픔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무력한 순응이 아니라 굳센 받아들임이다. 우리의 약함에는 의미가 있다. 그 약함은 강하고, 아름답다.      


“너랑 난 이 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 약함으로 이 상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강함이야.”     


내가 니노미야 일당에게 잔인한 폭력을 당한 날부터 고지마는 점점 더 변해 간다. 연한 글씨는 진해지고, 더 야위고 지저분해졌으며,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이” 깃든 듯 보인다.


그런 고지마와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 모모세다. 모모세는 니노미야 일당과 다니지만 언제나 먼 발치에서 심드렁하게 폭력을 관망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에서 의미를 걷어내고, 모든 일에 완벽히 무심으로 대처한다.       


“의미 따위 전혀 없어. 다들 그냥 하고 싶은 걸 할 뿐이겠지, 아마도. 먼저 걔네들한테 욕구가 생겼어. 그 욕구가 생겨난 시점에는 옳다거나 옳지 않다는 건 없어. 그리고 걔네들한테는 그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상황이 우연히 주어졌지. 너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래서 걔네들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야. 너한테도 하고 싶은 게 있잖아? 그리고 가능하면 그걸 하고 있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는 얼추 같아.”     


소설은 폭력의 가해자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거나 잘못된 일이 바로잡히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통쾌한 전개를 가볍게 비껴가고, 좀 더 인간의 근원적인 면모-약함과 강함, 선과 악, 자유와 의지 등–를 파고든다. 


그들의 악행이 점점 가속으로 치닫고 ‘나’와 고지마가 끔찍한 함정으로 내몰린 순간, 고지마는 처절하게 악행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패닉으로 이끈다. 소설은 그들을 심판하고 응징하는 대신, 그 견고한 악의를 지독히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무 의미도 깊이도 모른 채 휘둘릴 뿐인 그들을 세상 불쌍한 존재로 비추며, 그 얄팍한 힘의 질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그러뜨린다. 


고지마는 이 괴로움과 슬픔에 줄곧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운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의미 따위 잊은 듯한 세상의 냉소와 허무를 끝끝내 넘어선다.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심하게 일렁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 기억 저편의 아프고 그리운 시간들이 들쑤셔졌다. 묘사가 찬찬하고 섬세하여 둘의 감정, 공기의 흔들림, 그날의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고지마는 놀란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를 봤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눈만으로 기쁜 듯이 웃었다. 그때 나는 나한테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숨을 쉬고 있었고, 그에 맞춰 눈언저리에서 눅눅하게 젖은 열기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끝으로 내 손바닥에 글자 하나하나를 눌러 쓰듯이 느린 말투로 이야기하는 고지마는 희미한 어둠이 퍼지는 배경에 달라붙은 그림처럼 보였다.”     


“아무리 약해도 바람은 늘 불었고, 그 소리는 끊임없이 거기 있는 사물들의 틈으로 파고들어 모든 것을 연신 흔들었다.”      


<헤븐>은 고지마가 어느 그림에 붙인 제목이다(샤갈의 ‘생일’이라는 작품인 듯). 그림에 나오는 연인은 엄청난 괴로움을 함께 극복했다고, 고지마는 설명한다.      


“…… 두 사람이 모든 걸 극복하고 도달한, 평범해 보이는 저 방이 실은 헤븐이야.”


처음에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깊이가 없는 변함없이 단조로운 풍경”이었으나, 나는 고지마와 함께 괴로움을 겪은 뒤, 비로소 세상의 깊이를 얻고 세상 저편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헤븐은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슬픔의 의미를 아는 이들, 그것을 넘어선 이들만이 도달하는 곳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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