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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Aug 29. 2021

자그마한 추억 하나로
가끔 다독여주자

웹진 취향껏 18호


안녕, 오랜만이야. 



네가 떠나고 처음 써보는 편지야. 너에게 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몇 자 적어보려 해. 무엇을 얻기 위해 써 내려가는지 모르겠어. 편지를 다 적은 다음엔 알 수 있을까. 한국은 멈출 기미 없이 내리던 비가 갑자기 그치곤 뜨거운 햇볕이 난데없이 내리쬐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어. 네가 있는 곳은 이맘때쯤 해가 길고 따듯하다던데 그래도 겨울마냥 춥겠지. 



남들만큼 살아야 하니 힘든 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가다 갑자기 네가 떠올랐어. 네가 떠나기 전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삶의 뼈대로 삼았고,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를 온갖 행동에 붙여 고통스러워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삶에 네가 떠오른 건 왜일까.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떠나는 너의 등 뒤로 악착같이 잘 살 거라고 외쳤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네가 싫어하던 사주도 봤어. 타고난 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던 네 말을 이상하게 그날따라 이겨 먹고 싶더라고. 온갖 어려운 말로 뜻 모를 한자를 풀어내며 설명해주시는데, 그거 알아? 넌 이미 내 옆에 없는데 내가 미워하던 찌푸린 얼굴로 쓸데없는 짓 한다며 한창 잔소리를 해댈 것만 같은 거야. 



그래도 아저씨는 내가 잘 살 거라고 했어. 좋은 사주를 가졌대. 좋은 직장, 따듯한 남편 모두 얻을 수 있는 좋은 팔자. 복채 오만 원을 위한 말이었을까 괜한 의심도 했지만 아무렴 어때.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믿어봐야지. 네가 끊임없이 내 삶을 위로해줬던 것처럼, 무너지던 나를 지지해줬던 것처럼 몇 자 되지 않는 단어의 조합을 믿어봐야지. 



있잖아, 나는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타고난 성질을 여러 번 굴절시켜 내게 시선을 주는 모든 곳에 말이야. 네가 내 곁에 있었다면 아마 이미 그런 사람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겠지. 네 눈에 난 얼마만큼 반짝였을까. 네가 떠나면서 내 빛도 사라졌을까. 나를 향한 너의 따듯한 말이 듣고 싶어서 편지를 써 내려갔나 봐. 너도 가끔 나를 떠올리겠지. 우린 이제 닿을 수 없으니까 자그마한 추억 하나로 가끔 다독여주자. 잘 지내, 안녕.







Photo by Christian Lu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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