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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수 Jun 19. 2022

#14 - 여행의 행운과 불운

수에즈 운하 구경 실패

럭키데이


어째튼 아저씨들의 ‘호의’ 덕분에 수에즈 시내까지 싸게 오긴 했다. 자 이제 숙소를 잡을 차례다. 불목이라 그런지 수에즈 시내는 어마어마하게 붐볐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사람들도 노는 거 참 좋아한다. 목, 금요일 저녁의 시내의 분위기는 우리나라 홍대 못지않게 시끌벅적하다. 번화가의 인파를 헤집으며 구글맵에 나와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리셉션 그 어디에도 영어로 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리셉션에 앉아 있는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다.


나 : 오늘 하루 숙박하고 싶은데 방이 있어?

주인장 : !#@!#$&%$%$#@#


역시나 그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나를 조금 귀찮아하는 거 같기도 했다.  나름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숙박시설인데 기본적인 영어는 하는 게 보통 아닌가?  내가 가진 상식의 편협함을 또다시 확인했다. 그나저나 과연 여기 묵을 수 있을까. 실패한다면 1박에 약 15만 원짜리 고급 호텔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번역기에 하루 숙박하고 싶다는 말을 입력하고 보여주었다. 번역기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늘 의구심이 든다. 과연 내가 하는 말이 제대로 번역되었을까 하는. ‘나는 하룻밤 머물고 싶다’라는 문장이 잘못 번역되어서 ‘멍청아 저리 꺼져’로 출력되어도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 번역이 제대로 되었나 보다. 주인장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번역기 어플을 켜서 숙박비를 안내해 주었다. 숙박비는 백 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만 오천 원 정도였다. 숙박비를 내고, 숙박부 작성을 위해 여권을 주니 그는 나더러 여권을 복사해 오라고 했다. 응? 여권을 복사해 오라고? 이 밤에? 한국에서도 밤 10시가 넘어서 복사집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하물며 이집트에서야 더 어려울 텐데. 여권을 복사해 오지 않으면 숙박할 수가 없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아니 왜? 그냥 사진 찍어놔도 되는 거 아닌가? 주인장이 나를 받기 싫어서 수를 쓰는 건가 싶었다. 그럼 어디 가서 복사하냐고 물었다. 근처에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어쩔 수 없다. 일단 나가보는 수밖에.

주인장의 손에 들고 있는 저 종이가 여권 복사본이다

그런데 정말로 문이 열린 복사집이 있었다. 바로 근처에. 이집트에서 남들 다 노는 불목에 문이 열린 복사집이 있다니. 이집트. 이 나라의 매력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신다면 ‘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는 것’이라 대답할 테다. 복사한 여권을 들고 체크인을 마친 후, 짐을 방에 두고 저녁거리를 사러 다시 내려왔다. 마침 리셉션에 주인장이 있길래 내일의 일정과 관련한 정보를 몇 가지 물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좋겠지만, 인터넷에는 수에즈에 대한 관광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분명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로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수에즈 운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샤름엘세이크로 넘어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나에 대해서 주인장에게 물었다. 물론 영어로는 소통이 안될테니 번역기를 써서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주인장의 표정은 ‘왜 이런 걸 나에게 묻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분명 번역기가 이상한 말을 써놨겠지. 아직 AI는 좀 더 분발해야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가려는데 숙소의 입구에 동아시아인 두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유창한 아랍어로 주인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왠지 이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은 직감이 들었다. 순간, 손에 들린 초록색 여권이 보였다. 그들은 분명 한국인이었다.


나 : 익스큐즈미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두 분들 : 엇? 네. 한국분이세요??

나 : 네 여행을 하는 중인데 수에즈 운하를 보고 싶어서 왔어요.

두 분 중 한 분 : 아 그러시구나. 저는 카이로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이고 이 분은 제 선생님이세요.

나 : 아랍어가 너무 유창하셔서 설마 이집트인인가 했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두 분들 : 네 말씀하세요.


그분들에게 수에즈 운하를 보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 샤름엘세이크로 가기 위한 버스정류장은 어디인지를 물어봤다.


두 분들: 수에즈 운하는 전망대로 가시면 되는데 ‘Beach Social Club’ 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가시면 되어요. 저희도 거기 갔다 왔어요. 그리고 버스정류장은 대로 건너가서 ‘무시’라고 외치는 미니버스를 타면 돼요.

나 : 몹시 감사합니다.

두 분들 : 그런데 여권을 복사해 오라고 하는데 어디서 하는지 아시나요?

나 : 당연하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두 분은 수에즈의 구세주였다. 나는 복사집을 안내해 드렸다.


두 분들 :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 주세요. 저희는 13호실에 있어요.

나 : 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집트 여행이다. 관광객들이라고는 참빗으로 쓸어도 안 나올 도시에서 아랍어에 능통한 한국인을 만나다니. 어쩌면 나 여행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밤 11시가 다 되어 갔지만 수에즈의 시내는 여전히 붐볐다. 두 분을 복사집에 안내해 드리고 저녁도 살 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 젊은 친구들은 인종차별적 행동에 참 열심이다. 특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애새끼들이 아주 열성적으로 달려들었다. 눈 찢는 기본이고, 중국어를 흉내 내면서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다른 지역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여기 애새끼들은 뭔가 악의가 느껴진다는 거다. 카이로, 룩소르, 알산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그저 ‘외국인을 보니 장난치고 싶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여기 애새끼들은 어떻게든 나를 골려주고 놀려주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외국인을 별로 볼 일이 없어서 그런 건가? 이유야 어째튼 참 못 배워 쳐 먹은 놈 들이다. 솔직히 처음 이집트에 왔을 때는 조금 욱하기도 했는데  10일쯤 되니 그저 귀찮기만 했다. 샤와르마를 하나 사 와서 먹었고, 일찍 잠들었다.


행운 멈춰!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샤름엘세이크로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최대한 빨리 수에즈 운하를 보고 터미널로 가야 했다. 우버를 불러서 어제의 그 ‘Beach Social Club’으로 갔다. 가는 길에 경찰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경찰이 오늘은 금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젠장. 수에즈 운하 하나 보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해 가며 왔는데. 실은 수에즈 운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스마일리아’로 가야 한다는 정보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는 역시 수에즈에서 봐야지 싶어서 굳이 여기로 왔는데 문이 닫혀 있을 줄은.  아쉬운 마음에 먼발치에서 수에즈 운하에 거대한 배가 지나가는 장면을 잠깐 쳐다보다 왔다. 우버 기사님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수에즈 운하는 이스마일리아에서 보는 게 더 좋아.’라고. 저도 알거든요?

좌 : 문닫혔다는 말 듣는 중. 우 : 저 먼발치에서 바라본 수에즈운하의 배


수에즈 운하를 못 본다면 이 도시에 더 이상 볼일은 없다. 나는 그대로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싸 들고 터미널로 향했다. 어제 택시에서 내린 곳 반대편에 미니버스가 잔뜩 서 있었다. ‘무시’라고 외치는 버스는 꽤 많았다. 하나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미니버스는 우리나라의 스타렉스 같은 승합차다. 정원 11명짜리 승합차에  못해도 20명은 타는 거 같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 틈에 끼어 오다 보니 불판 위에서 눌리는 호떡이 된 기분이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버스터미널은 어제 내린 거기였다. 매표소로 가서 샤름엘세이크 가는 버스 시간을 물었다. 매표소 직원은 코로나 이후에 샤름엘세이크행 버스가 없어졌다고 했다. 유일한 방법은 카이로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것뿐이라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름 여행 운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여행운이 나쁜 사람이 되었다. 뭐 어쩌겠나. 이런 거에 일희일비하면 여행 못하지. 그나저나 감성에 젖어 카이로에 작별을 고한 지 4일 만에 다시 거기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내 감성 물어내.


터미널 가는 미니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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