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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킨다나스 Mar 15. 2023

나는 얼마나 민주적인가?


권위주의: 어떤 일에 대하여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

사전


민주적

명사

1.국민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는 것.

관형사

1.국민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가끔은 내가 권위주의에 너무 익숙한게 아닌가, 그래서 그것이 잘못인지 모르고 그냥 사나 싶을 때가 있다. 학교에서, 집에서 권위주의 문화에서 너무나 푹 담겨져 20년 넘게 살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은 권위주의에 잠겨 살고, 그러면서 책으로는 민주주의, 평등, 존중 이런 개념을 배웠던 세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세대에 (아니면 나 자신에게) 뼛속까지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라는 개인에 대한 것 아닐까. 그리고 요즘에서야 MZ세대들이 강조한다는 합리성, 탈권위에 아.. 저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구나를 뒷북치듯 생각하고 있다. 왜 이런 굵직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는가 하면, 요즘 학교에 근무하면서 내가 이제야 비로소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내 옆자리 부장샘, 내 등뒤에 있는 교감샘, 그리고 자주 보이지 않아 더 존경하게 되는 교장샘의 영향이 크다.


이제까지의 부장샘들은 일단 나보다 연배가 훨씬 위이고 전지전능한 느낌이라 그저 '예,예' 하기 바빴는데 반해 지금은 같은 또래에 같이 의견을 공유하고 해결해나가는 식이다. 같은 선상에서 의견을 말하고 서로 얘기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고르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은데. 내가 왜 이렇게 호들갑스러워하나 곰곰 생각해 봤다.


어릴 땐 아버지가 루이14세 저리가라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고. (죄송합니다만 그랬습니다 아버지), 나의 성역활에 있어서 좋건싫건 롤모델이었던 어머니는 한없이 힘이 없으셨고. 집안에서는 위에 오빠가 있어 자식으로써도 둘째인데다가 여자인 나에게는  티끌같은 미미한 권리랄까 인정만이 있었다. 집안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 내 의견이 반영된 것은 고사하고 내 의견을 물어보는 경험조차 기억이 없다. 이렇게 말하니.. 무지 비관적인 환경같지만 '민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집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하;; 남편과 결혼한 뒤에 남편이 집안의 굵직한 결정을 주로 내려 나는 주로 소극적 입장을 취했던 적이 많았다. 날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것은 오랫동안 몸에 배인 것일수도 게을러서 책임전가를 한 것일지도, 남편이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더 잘겠지 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친정 집에 반해 시댁에서의 분위기는 훨씬 민주적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처음 시댁식구들과 1박2일 놀러를 갔었는데 시댁식구들 모두가 각자 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이것은 엄연히 문자그대로 그리고 의미적으로!! both Literally and figuratively)  자기의 생각과 입장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설령 그것이 헛소리라 할지라도) 그럴 수 있는 판이라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럼 '당신 애 키우면서 어린 자녀보다 힘있는 자리이니 이제 당신이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키워내고 있을 것 아니오'(갑자기 이 무슨.. 번역체 말투;;) 라고 묻는다면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보고 들은 것이 강압적 방법이니, 핑계를 대자면 바쁜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효율과 속도가 중요하므로 밥을 먹을 때도 '얼렁 밥 먹어. 이거 치워. 이거 끝내. 이거 했어? 몇 시 전에 해. 이 닦았어? 손톱 지금 바로 가서 잘라' 이런 식의 명령조 말을 하게 된다. 이제 자식1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대꾸를 하면서 '전에 엄마가 이렇게 했잖아. 이렇게 하면 더 낫잖아' 하면 내 주장만 다다다다 하다가 일그러진 애 얼굴을 보면서 '엄마말이 틀려? 그래서 억울해?' 라고 말하고 일단 상황을 끝낸다. (적다 보니 내 자신이 정말 정말 별루다ㅠ)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 없는데.


의견을 묻기도 하고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러니까 넌 어떻게 할래? 라고 물어봐서 알아서 자기가 선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말한. 의견을 내면 그것을 듣고, 그렇게 했을 때의 장단점을 말해주고 선택하게 하는 것은 지금 교감샘의 방식이다. 또 다른 의견을 내면 다시 그렇게 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고, 예상되는 상황은 이렇다 라고 말해주신다. 그럼 또 샘들이 머리를 굴려 각각의 의견을 재 보다가 그럼 이렇게 하는게 제일 낫겠네 하고 자연스럽게 의견이 수렴되면 그걸로 결정한다. 그리고 교장샘은 일단 자주 교사들 앞에 나오지 않고 나오시더라도 항상 수고가 많다. 제일 고생하신다. 애썼다. 이런 말을 하시고 결정적인 선택만 하고 뒷 감당은 본인이 하겠다고 하신다. 상황이 이러니 크고 작은 결정사항에 대해 불만이 없고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다시금 나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고 민주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남을 대하나 반성하게 됐다. 과거의 구태를 못 벗고  권위적으로 절 대해줘도 전 괜찮아요 이런 생각마저 했던게 아닌가. 민주적인 상황과 대우가 오히려 민망했던것 같다.


조직에서는 중견, 세대로는 기성세대가 되니 이런 변화의 상황을 겪기도 하다니 감개무량하다. 전혀 변하지 않고 나로써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던 그런 상황도 변하기도 하는구나. 내가 그런 수혜를 입기도 하는구나. 그런 의미에서 내 자식들에게 일단 자주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참, 올해부터 학교에 선도부가 자율부로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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