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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다 Mar 17. 2023

순종적인 학생

나는 참 순종적인 학생이었다.

지금도 그 바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나마 덜 순종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참 힘겨웠다.


학창 시절. 엄마가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오시면 엄마는

늘 칭찬만 듣고 오셨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곤란할 정도로 영특하지도 비판적이지도 않는(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학생들이 소복이 들어앉은 교실에서 무척 다루기 쉬운

난이도 0에 가까운 학생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전달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체제를 지탱시켜 주는 소리 없는 무리의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필수적이고 사실 가장 고마운(고마워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또한 편 생각하면 뭐 하나 거스를 줄 모르고

순간의 위기에 이런 말 저런 말로 둘러댈 줄도 모르던

그때의 내가

참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생각은 학교를 떠나

엄마가 되고

사회에 나와 숱하게 들었다.


생활 곳곳에서 따져야 할 순간과 싸워야 할 상황은 너무나 많다.

가볍게는 식당에서 주문이 너무 늦게 나올 때부터

심하게는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나 업무

교통사고 현장에서의 잘잘못 따지기

내 자식과 관련된 기관에서의 잘못

이웃과의 다툼이나 돈이 개입된 상황에서의 나의 돈값을 챙기기 위한 논리

어른이 된 자녀로서나 새 가족으로 편입된 며느리로서

나와는 정딴판인 거센 기질의 무논리의 학생들을 대할 때가 그랬다.


나는 책상에서 시험만 준비하다 어느 날 학도병이 된 듯

몇 달 내리 누워 지내다 철인삼종경기에 나간 듯

온몸이 아팠다.

아 어릴 때 더 내 주장을 크게 말할걸.

어른도 대단한 존재가 아닌데 설득도 해볼걸.

안되는 것 되도록 협상도 해볼걸.

궁지에 몰리면 그럴싸하데 거짓말도 해볼걸.

화나면 화난다고 버럭 화도 낼걸.

아까와 말이 다르다고 따져도 볼걸.

착하고 얌전하지 말걸.

후회가 됐다.


그 모든 것이 사춘기의 치기 내지는 똘기 내지는 싸가지일 수는 있겠지만

다듬기 전에 한 번은 거쳐보아야 할 인간의 통과의례 같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가장 뾰족한 시절 나는 세상과 가족과 학교에 대한 모든 불만을 그나마 안전한 사람이었던 엄마에게

한껏 털어놓았었는데 그때 못난 얼굴을 하고 쫑알대던 나를 감내해 준 엄마에게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20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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