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갓 부임한 사회선생님이 있었다. 안정적인 여건 속에서 자란, 언뜻 얌전한 학생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수면 바로 아래에는 중학생 특유의 야생미가 늘 지글거렸다. 특히나 최연소 남자 선생님이라니 뭐라도 장난칠 일 없을까 고심했다. 선생님은 존재자체로 작은 이벤트였다. 애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여느 신규선생님이 그러하듯 열정적이셨고 노련한 샘과는 다른 새로운 몇몇 것을 시도하셨다. 그 새로운 것이라 하면 선생님이 내준 주제로 글쓰기를 하고 발표를 하거나, 사회문제에 대한 프로젝트 수업 같은 것이었다.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노동문제나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하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린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가 아이 맡길 형편이 안 돼 밖에서 문 잠그고 일을 하러 나갔다가 화재가 난 기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렇듯 수업 장악력이라고 해야 하나, 물 샐 틈 없는 치밀한 수업 계획, 전개 이런 건 상대적으로 부족하셨던 것 같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협동학습으로 프로젝트 수업이라는 것을 하는데 같은 모둠이 된 애들은 모두 나 몰라라 하고 결국 결과물 제출일 하루 전날 나 혼자 낑낑대며 세상의 모든 십자가를 지고 과제를 하고 홀로 제출했다. 지금 같았으면 모둠원 꾸리는 것부터 매우 중요한 일이고 역할도 나누고 단계별로 진행상황도 확인하고 피드백도 주고 각자 맡은 일을 했는지 여부도 알아가며 해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당시 고생을 하면서도 나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고 애들에 대한 배신감과 호구가 된 불쾌한 감정만 들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선생님의 프로젝트 수업은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시도는 좋았으나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맛보게 해 줬다는 점에는 감사하나 그 나머지는 단언컨대 모두 엉망이었다. (하하 죄송하지만 사실입니다) 시골 출신에 순박한 외모를 가졌던 선생님은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교육에 대한 생각이 뚜렷하셨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 문득 선생님 이름을 검색을 했더니 본인이 자체 제작한 수업책자가 문제가 되어 결국 학교를 그만두셨다는 내용이 나왔다. 기사화될 정도였으면 꽤나 큰 문제였고 선생님도 ‘어차피 여긴 나에게 맞지 않는 곳이었어’하면서 홀가분하게 떠나가지 않으셨을까 애써 추측해 본다. 국정교과서에서 말하는 역사관과 달라서였는지 어떤 정치적인 부분을 다루었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만 확실한 것은 보수적인 강남의 사립중학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다시 알게 된 바 선생님은 강원도 어디 깨에 간디학교에서 무슨무슨 직함을 달고 근무하신다고 했다. 땅, 하늘, 작물 이런 것과 무척 잘 어울리셨던 선생님은 비로소 있어야 할 곳을 딱 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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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나도 그 시절 선생님과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저경력 교사로 주변에 경력 많은 선생님을 유심히 살펴본다. ‘저분은 저런 일을 특히 잘하시고 이 분은 이런 일을 포기하고 저런 일에 주력하고’ 나는 어떤 선택지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고 배울만한 부분은 어떻게 닮아갈까를 생각한다. 그러다 어떤 분은 저렇게 허술해도 괜찮은 걸까 싶은 분도 있다. 저렇게 엉성하게 수업을 진행해도 되나. 저렇게 고함과 우격다짐으로 애들을 통솔해도 되나. 그러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 선생님들을 다시 보면 그 안에서 훅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세밀한 부분은 부족하지만 긴 호흡에서 하는 수업을 잘하게 되어 있기도 하고, 꽥꽥 소리만 지르는 것 같지만 그 뒤로 애들도 잘 보듬어 시끌벅쩍하면서도 학급이 재밌게 굴러가기도 한다. 그 힘으로 수업이 시너지를 얻으면서 말이다.
가끔 아니면 종종 어처구니없는 일로 샘들을 열폭으로 이끄는 학생들을 본다. 그럴 때면 “애들 아직 클 때잖아. 크느라 그러는가 봐.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며 조급해진 마음을 스스로 서로가 다독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몸은 다 컸지만 우리 어른도 교사도 날마다 더 무르익고 있다. 몇 년 전엔 지난해엔 서툴렀지만 이번엔 올해는 더 나아지고 있다. ‘아 이번에도 망했어. 그냥 안전하게 갈걸. 괜한 시도를 했네’ 하면서 자책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도 성장기 아이처럼 흉터 안고 자라고 있다.
예전의 그 서툰 초임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교사도 학생도 누구도 완성형일 수 없음을, 누구나 진행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