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들이 모두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다
난 예뻐지고 싶어서 오름을 오르는 게 아니다.
마른 체형을 가지고 싶어서 오름을 오르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내가 열심히 오름을 오르는 이유는 오로지 건강 때문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많은 고생을 한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켜봐 왔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게 중요한 건 마른 체형을 갖는 것도, 예뻐지는 것도 아닌 '정상인의 당 수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하고, 오름에 오르는 동안 자연적으로 살이 빠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참견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진심 어린 걱정과 쓸데없는 참견,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아마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체중이 세 자리 숫자였을 때 마지막으로 날 봤던 지인들이 시간이 지난 후 체중이 두 자리로 변한 나를 볼 때면 하나같이 전보다 보기 좋아졌다며 인사를 건넸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걸, 꼭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어떻게 살을 뺐느냐, 무슨 운동을 했느냐, 다이어트 약 먹고 뺀 거냐 등등 취조하듯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전에 비해서 빠진 체중일 뿐, 여전히 고도비만인 내게 아예 대놓고 전보다 보기 좋아졌지만 더 노력해야 하는 거 알지 않느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열심히 해서 얼른 날씬해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름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처럼 고도비만인 사람이 그런 운동을 하면 늙어서 관절이 박살 나서 걷지도 못하게 될 거라고, 차라리 병원에 가서 위 절제 시술 상담을 받아보거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먹어보는 게 어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홈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홈트로는 바른 운동 자세를 잡을 수 없으니 무조건 헬스클럽을 등록해 PT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내 주변인들 대다수가 거의 다이어트 전문가처럼 나에게 한 마디 씩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나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대부분은 하하, 호호 웃고 넘길 때가 훨씬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 때면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핑계가 있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안 해주겠지만 난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그래.
흠...
마음의 그늘이 많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며 밝아지고 하루하루가 신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날 걱정했다.
내가 걱정된다는 사람들에게 나를 왜 걱정하느냐 물으면 대개는 당황하며 그 이유를 얼버무린다. 정확히 본인이 나를 왜 걱정하는지 말을 못 한다.
그들이 얼버무리는 이유를 난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날 걱정하는 이유를 말이다.
세상이 비만인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기 관리를 못하는 여자, 게으른 여자, 먹는 것에 비해 몸을 움직이지 않는 둔한 여자.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실패자'로 보기도 한다.
외모도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비만인 여자는 뭘 해도 성공하기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비만인 여성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나의 실패를 걱정하는 것이다. 여자의 비만은 곧 실패니까.
그들은 날 위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듣는 내가 달갑지 않으니 그건 날 위한 말이 아니다.
체중이 세 자리 숫자일 때도, 열심히 운동하여 체중이 두 자리 숫자가 되어도 그들은 나에게 훈수를 둔다.
하지만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나의 비만은 '실패'가 아니라 그저 내가 살면서 극복해야 할 수많은 고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말들 중 정말 참기 힘든 말이 있다.
와! 살 빠졌네? 거봐,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네가 자극을 받지. 내 덕분에 살 뺐네.
웬만한 말에는 내성이 생겨서 웃고 넘기지만 이런 종류의 말에는 꼭 대꾸를 해준다.
당신이 나에게 준건 자극이 아니라 상처와 무례함이었다고.
그리고 난 당신 덕분에 살을 뺀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살을 뺀 거라고 말이다.
내가 밤에 배고픈 거 참고, 내가 내 다리로 오름에 오르면서 살이 빠진 건데 여기서 당신 덕분인 게 어디 있느냐고 웃으며 비꼬아주고는 했다.
운동을 하고 오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바로 이것이다.
전에는 누가 나에게 무례한 이야기를 해도 얼굴만 새빨개질 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나중에 생각나서 혼자 가슴을 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들 스스로가 나에게 무례했음을 깨우쳐 주려고 한다.
대부분은 나에게 말실수했다며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살 빼더니 예민해진 것 같다며 본인의 무례함 보다 나의 예민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자기 집 창문에 먼지가 낀 건 모르고 이웃집 벽이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똑같은 격이다.
난 지금도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 진행 중이다.
내가 써내려 가는 글들은 몇십 Kg을 감량해서 몸짱이 되었다는 그런 대단한 다이어트 성공담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열심히 진행하다가도 중간에 잠시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가 조금씩 요요도 겪었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또 열심히 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중요한 건, 속도만 느릴 뿐 계속해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뭐라고 훈수를 두던 그건 더 이상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난 그저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오름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