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외치다
동네에 있는 작은 오름을 올랐던 그날 이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 매일 아침 두 언니와 함께 오름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첫날 구토가 올라오고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정도로 힘이 들었으면서도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성취감에 중독되었는지 아주 날마다 오름에 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제주도에 있다는 약 360여 개의 오름을 검색하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오름들을 위주로 등산하기 시작했다. 땀 흘리는 걸 싫어하던 내가, 숨찬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이제 내 발로 산을 찾아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첫 오름을 올랐던 그날로부터 몇 개월 후, 난 드디어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의 정상, 백록담에 내 두 다리로 우뚝 섰다.
처음에는 분노로 시작한 다이어트였다.
예뻐지고 싶거나 마른 체형을 갖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살이 쪘다는 이유로 나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무시와 무례의 말들. 그 말들이 싫어서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 꾸준히 하기 어렵다는 홈트를 꾸준히 해내고, 운동이라고는 싫어하던 내가 등산을 하면서 내 다이어트의 이유는 무례한 그들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마른 체형을 갖는 것도, 예뻐지는 것도 아닌 '정상인의 당 수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하고, 오름에 오르는 동안 자연적으로 살이 빠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참견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체중이 세 자리 숫자였을 때 마지막으로 날 봤던 지인들이 시간이 지난 후 체중이 두 자리로 변한 나를 볼 때면 하나같이 전보다 보기 좋아졌다며 인사를 건넸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걸, 꼭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어떻게 살을 뺐느냐, 무슨 운동을 했느냐, 다이어트 약 먹고 뺀 거냐 등등 취조하듯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전에 비해서 빠진 체중일 뿐, 여전히 고도비만인 내게 아예 대놓고 전보다 보기 좋아졌지만 더 노력해야 하는 거 알지 않느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열심히 해서 얼른 날씬해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름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처럼 고도비만인 사람이 그런 운동을 하면 늙어서 관절이 박살 나서 걷지도 못하게 될 거라며, 차라리 병원에 가서 위 절제 시술 상담을 받아보거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먹어 보는 게 어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홈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홈트로는 바른 운동 자세를 잡을 수 없으니 무조건 헬스클럽에 등록해 PT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내 주변인들 대다수가 거의 다이어트 전문가처럼 나에게 한 마디 씩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나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대부분은 하하, 호호 웃고 넘길 때가 훨씬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 때면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핑계가 있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안 해주겠지만 난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그래.
흠...
마음의 그늘이 많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며 밝아지고 하루하루가 신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날 걱정했다.
내가 걱정된다는 사람들에게 나를 왜 걱정하느냐 물으면 대개는 당황하며 그 이유를 얼버무린다. 정확히 본인이 나를 왜 걱정하는지 말을 못 한다.
그들이 얼버무리는 이유를 난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날 걱정하는 이유를 말이다.
세상이 비만인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기 관리를 못하는 여자, 게으른 여자, 먹는 것에 비해 몸을 움직이지 않는 둔한 여자.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실패자'로 보기도 한다.
외모도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비만인 여자는 뭘 해도 성공하기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비만인 여성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여자의 비만은 곧 실패니까.
그들은 날 위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듣는 내가 달갑지 않으니 그건 날 위한 말이 아니다.
체중이 세 자리 숫자일 때도, 열심히 운동하여 체중이 두 자리 숫자가 된 지금에도 그들은 나에게 여전히 이런저런 훈수를 둔다.
하지만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나의 비만은 '실패'가 아니라 그저 내가 살면서 극복해야 할 수많은 고비이며, 하루하루 그 고비를 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말들 중 정말 참기 힘든 말이 있다.
와! 살 빠졌네? 거봐,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네가 자극을 받지. 내 덕분에 살 뺐네.
웬만한 말에는 내성이 생겨서 웃고 넘기지만 이런 종류의 말에는 꼭 대꾸를 해준다.
당신이 나에게 준건 자극이 아니라 상처와 무례함이었다고.
그리고 난 당신 덕분에 살을 뺀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살을 뺀 거라고 말이다.
내가 밤에 배고픈 거 참고, 내가 내 다리로 오름에 오르면서 살이 빠진 건데 여기서 당신 덕분인 게 어디 있느냐고 웃으며 비꼬아주고는 했다.
운동을 하고 오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바로 이것이다.
전에는 누가 나에게 무례한 이야기를 해도 얼굴만 새빨개질 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나중에 생각나서 혼자 가슴을 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들 스스로가 나에게 무례했음을 깨우쳐 주려고 한다.
대부분은 나에게 말실수했다며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살 빼더니 예민해진 것 같다며 본인의 무례함 보다 나의 예민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자기 집 창문에 먼지가 낀 건 모르고 이웃집 벽이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똑같은 격이다.
난 지금도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 진행 중이다.
내가 써내려 가는 글들은 몇십 Kg을 감량해서 몸짱이 되었다는 그런 대단한 다이어트 성공담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열심히 진행하다가도 중간에 잠시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가 조금씩 요요도 겪었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또 열심히 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고도비만이다. 아직 감량해야 할 살들이 어마어마하고 당뇨수치도 늘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건, 속도만 느릴 뿐 계속해서 내가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뭐라고 훈수를 두던, 어떤 무례함을 내게 쏟아내건, 그것들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말들은 이제 내 마음에 손톱만큼의 생채기도 낼 수가 없다.
몇 년 전에도 고도비만이었고, 지금도 고도비만인데 난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