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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Sep 04. 2023

고도비만과 등산, 그리고 식욕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꾸준한 홈트와 스쿼트로 기초체력이 올라오고 체중계 숫자가 내려가는 게 눈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다들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바로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한 순간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 이제 됐다~ 하며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나태함이 다시 고개를 들기 쉬운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는 식단이 80%, 운동이 20% 라는 말이 많다.

 식단 만으로 체중을 감량하면 요요현상, 살쳐짐, 탈모, 생리불순 등 부작용이 많기에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놈의 운동의 최대 단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식욕을 활활 불타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운동으로 땀을 쏙 빼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모른다.

 처음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방울토마토만 먹거나 사과를 깎아먹었었다.

 그런데 난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해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방법은, 점심식사 시간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저녁에만 조금 신경 써서 소식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이지, 양껏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늘 배가 고픈 상태로 지내다가 저녁시간에 폭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결국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사이에 간식시간을 두어 아몬드, 방울토마토를 틈틈이 먹어주었다.

 식욕과의 싸움이 제일 힘들었다.

 혹시라도 그 싸움에 패배해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거나, 과식을 하게 되면 몰려오는 자책감은 주체할 수 없기 마련이었다.

 이전에 다이어트를 시도했을 때에는 한번 그렇게 먹고 나면 ,


 역시 이번 다이어트도 끝!!! 그냥 먹자!!!  


라며 자포자기 식으로 더 먹어댔다. 그러니 요요현상을 거듭하며 몸이 망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말한 '미련한 짓'이란건 '식단을 실패한 행위'가 아닌 '자책하는 행위'를 지칭하고 있다.

 

 에잇. 못 참고 먹어버렸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 홈트시간 10분 더 늘리자!


라고 생각하며 다음날 더 파이팅 넘치게 운동했다.

 과식 한 번 하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몇 번 먹었다고 내가 그동안 노력해 온 것들이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난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를 향한 믿음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었다.


 운동은 나의 몸보다도 정신을 더욱더 빠른 속도로 바꿔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침 동네에 있는 작은 오름을 등반하며 운동하는 언니 두 명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두 언니는 늘 활기찬 모습이었다.

 조금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두 분이 매일 아침 동네에 있는 오름 오르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하는데 처음에는 크게 망설였다.

 난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터질듯한 허벅지의 느낌, 그리고 남들보다 더 줄줄 흐르는 땀, 몸에 열이 오를 때면 어김없이 번지는 얼굴의 홍조... 생각만 해도 등산은 정말 싫었다.

 하지만 집에서 홈트라는 고비를 넘은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이제는 산도 거뜬히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게 되었다.

 결국 두 언니와 매일 동네 작은 오름에 등반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쇠뿔도 당긴 김에 빼야 한다며 당장 다음 날 아침부터 합류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뻥뻥 치고 말았다.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직도 고도비만이었지만) 도전욕구가 막 샘솟았는데 내가 등산을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두 언니와 함께 인생 첫 등산을 하게 되었다.


 자신감 있게 약속을 잡고 집에 와서는 덜컥 겁이 난 나는, 토털 사이트에서 우리가 오를 오름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높이가 135m 밖에 되지 않는 동네 뒷산이었다.

 왕복 1시간 내외라는 정보를 접하고는 괜히 걱정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편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두 언니는 내가 검색해서 미리 정보를 알아봐 두었던 정식 등산로가 아닌 길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들은 정식 등산로가 운동이 안된다며 정말 짧고 굵은 코스로 날 데리고 갔다. 본인들은 항상 거기로만 다녔다며 운동이 엄청 잘 된다고 호언장담을 하셨다.

 두 언니는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는 내 마음은 모른 채 본인들이 가는 코스가 일반 등산로에 비해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연신 웃으며 해맑게 말하며 걸었다.

 

 그리고 그 짧고 굵은 코스 시작점에 다다른 나는 생각보다 어려워 보이지 않는 길을 보며 한시름 내려놓고 힘차게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입 지점을 지날 때 즈음, 엄청난 수의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앞에서,

 

 아.. 어떡하지? 그냥 몸이 좀 안 좋다 하고 돌아갈까?


 나는 또 이 상황을 피할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동안 기초체력이 많이 올랐다는 걸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었는데, 정말 어느 정도로 기초체력이 오른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 가보자!!! 힘들어봤자지 뭐! 죽기야 하겠어!


 언니들은 나를 배려해 내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계단을 올라주었다.

 나도 호흡을 조절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총 112개의 계단을 오르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추어 섰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폐만큼이나 허벅지도 터질 것 같았다.

 숨은 가득 차오는데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112개의 계단 지옥이 끝나고 나서 좀 편안해지나 싶더니 그 뒤로는 평지가 하나도 없는 길이었다.

 오로지 오르막만 계속되는 길이었는데 경사가 상당했다.

 상체를 앞으로 숙여 올라가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른 곳이었다.

 그런 경사가 정상까지 계속 반복이 되는데 정상까지 다다르는 전체 길의 60% 정도를 차지하니 호흡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정말 쓰러지겠다 싶었다.

 112개의 계단도 넘었던 나였지만, 그 경사길에서 세 번을 주저앉았다.

 첫 번째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나를 기다려주는 언니들에게 그냥 먼저 가시라고 했으나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며 같이 올라가자고 힘을 주셨다.

 두 번째는 주저앉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양 쪽 손으로 땅을 짚어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언니들, 저 도저히 못 가요. 여기 까지만 와도 저는 괜찮으니 언니들 얼른 올라가세요. 전 내려갈게요.


 하지만 언니들은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조금만 더 힘 내보라며 계속 내가 일어설 때까지 날 기다려 주었다.

 응원에 힘입어 힘겹게 일어나 한 발, 한 발 내딛다가 몇 불후 다시 앞으로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 번째 주저앉았을 때는 현기증마저 났다. 얼굴에 홍조까지 심해지고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심지어 구역질까지 계속 올라왔다.

 나 이제 정말 못 간다고, 정말 나 기다리지 말고 그냥 올라가 주시면 안 되느냐고 거의 울면서 이야기했지만 언니들은 절대 날 두고 가지 않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못 봤어?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전우를 구하기 위해서 그 고생하는 것 좀 봐.

 우리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너 데리고 정상으로 간다!!! 넌 이제부터 라이언이야!


 그날부터 내 별명은 '라이언 일병'이 되었다.

 결국 두 언니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로 고내봉의 정상에 내 두 발로 우뚝 섰다.






 추운 겨울이었다.

 몸 움직이는 걸 싫어했던 초고도비만이었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정상'까지 완주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가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거봐!!!! 할 수 있다고 했지?


 고작 135m 밖에 안 되는 동네 뒷산이었지만 난 그렇게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었다.

 정상에서 언니들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귤을 주면서 잘했다고, 잘 참아냈다고 격려해 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일부러 익살스러운 농담을 해가며 말을 돌렸다.

 내 평생 해낼 수 없으리라 믿었던 것을 해냈다.

 남들에게는 마실 삼아 오르는 정말 낮은 동네 뒷산이지만 나에게만큼은 태산처럼 느껴졌다.

 결국 난 정상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홈트라는 산을 넘어 정말 동네 뒷산도 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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