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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May 09. 2020

메이지유신= 서구화라는 등식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들.

제레드 다이아몬드,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를 읽고.

서구의 침입으로 시작된 국가적 위기에 대응한 1853년 일본에 대한 제레드의 분석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껏 몇 구절의 문장들로 일본을 이해해왔다고 자부한 내 과거를 아주 크게 반성했다. 또한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역사시간에 배운 메이지 유신은 서구 자본주의 세력에 편승하여 전통을 버리고 서구의 입맛에 맞는 체제와 문물 도입으로 생존을 꾀하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서 근대 일본은 '기회주의자', '서양세력의 앞잡이'의 이미지로 구축되었다. 미국에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대는 원숭이로 묘사되는 만평들도 한 몫한 듯하다. 이러한 인식이 일본에 대한 크나큰 오해를 낳는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기회주의자?' 도쿠가와막부는 서양으론 최초로 1540년대 포르투갈 상선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 서구를 반기기는커녕 흥선대원군과 마찬가지로 쇄국을 일관했다. 만약 우리가 외계인을 처음 마주한다면 본능적으로 처음엔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겠나 싶다. 근대시기에 우리나라는 쇄국, 일본은 이른 문호 개방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 힘든데 이 세상은 자꾸만 이분법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서 '서구의 앞잡이'라는 이미지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군인들의 할복자살사건과 가미가제 특공대, 그리고 일황의 항복 선언에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그의 자존심을 설명하지 못한다.


메이지 유신 당시의 일본 [사진출처: 필자 인스타그램]


근대 일본은 빠르게 전개되는 위기에 대해 원칙과 행동 방침의 확립, 그리고 정부의 기동성이 상당했던 것 같다. 제레드는 개인이든 국가든 당면한 위기에 대해 '선택적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하는데, 메이지 시대 일본에게 각종 문물 도입은 오로지 국력 향상을 위한 도구였을 뿐,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정체성은 오히려 강화되어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의 입헌군주제 채택은 근대적 체제 개편으로 서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황제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는 독일식 헌법을 차용한 결과였다. 막부 체제가 전복되어 각 영지에서 반란은 상당하고 서양문물 도입으로 굉장히 혼란했을 당시 사회상을 감안하면 정부의 치밀함이 아주 상당하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치체제, 군사, 경제 등 여러 선진국의 사례를 검토하여 일본 상황과 적합도를 면밀히 따져 선택적으로 차용하고, 그 과정에서 서구식 사상 유입을 경계하여 '신도'라는 국가종교를 중심으로 황제를 중심으로 한 민족의 동질성을 더욱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필두로 한 사상 전파를 감안하면 일본 지배계층은 예로부터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힘을 간파한 것이 분명하고, 메이지 유신은 위기상황에서 자국의 부상을 잠시 유예하고, 체계적으로 후일을 도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제레드의 근대 일본 평가 부분을 읽으며 이 세상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속내는 물음표라는 것을 더욱 명확히 했다. 덧붙여서 구시대적 산물로 치부되는 이데올로기란 것은 지금도 보이진 않지만 아주 교묘하고 심오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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