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Dec 21. 2020

더 많이 벌거나, 더 적게 바라거나.

행복과 돈은 비례하지 않는다.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해서 꼭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봤을 때 돈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일상에 더 많은 문제가 따르는 건 맞는 거 같다. 돈은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불행을 나타내는 지표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소유를 욕구로 나눈 정도에 귀결된다고. 많은 것을 가지거나, 혹은 보다 적은 것을 욕망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는 것보다는 욕망을 절제하는 편이 분명 더 쉬운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은 내가 많이 벌고 싶다고 해서 많이 벌 수 있는 게 아니지만(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내 욕구의 통제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는 것이니까.


물론,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고 해서 끓어오르는 소비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는 일도 생각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순수한 인간의 욕망에 더 닿아 있기에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태생이 경쟁을 즐기는 타입이 되질 못한다. 어떻게든 분모를 줄이고자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때문에, '돈'에 대한 내 삶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그것이 돈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푯대다.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이게 진짜 어려운 것인데, 그만큼 멋진 신념이기도 하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정도의 돈만 가지면 된다. 그게 내 입장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돈에 대해 최근 들어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과연 나 스스로 내 삶이 안정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돈의 Bottom Line은 어디인가?'


이 고민을 최근 들어 더 많이 하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는 요 근래 내 인생에서 가장 부요한 시기를 살아가는 중이다.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받기만 해야 했던 학창 시절을 지나,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겨우 용돈으로 월 40만 원 정도를 보태던 대학 시기를 거쳐, 최저임금 정도의 돈을 받으면서 일을 했었던 2년의 계약직 생활을 넘어왔다. 이제는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엄청난 회사는 아니어도, 나름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고 반년 정도 착실히 일을 하며 돈을 모으는 중이다.


덕분에 소비에 대한 자유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아르바이트 월급 받기 직전이면 통장 잔고가 0이 될까 봐 전전 긍긍하며 가슴 졸이던 대학생 때와 비교하면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제는 길 가다가 먹고 싶은 게 눈에 들어오면 돈 걱정 없이 사먹을 수 있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엄청 명품이 아닌 이상 살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장의 생활비 걱정 없이 선물을 사줄 수 있다던가, 큰 부담 없이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내 벌이 수준에 100% 만족하고 있냐고 자문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부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아, 이 정도로 내가 과연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살면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는 지금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나름대로 생각해본 끝에, '나는 왜 항상 돈이 부족한 거 같다는 불안감에 쫓기고 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1. 타인과의 비교.

내가 얼마를 벌든,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벌이에 맞는 소비를 하고(FLEX 하고), 또 그걸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응당한 보상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려올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작고 귀여운 월급에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내 삶만 놓고 봤을 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데,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 옆에 내 삶을 갖다 놓는 순간 왠지 모를 박탈감과 불안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 '이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회적 통념이나 시선들 때문에 마음이 쫓기기도 한다. 최근 들어 내 주변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가장 많이 비교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다. 내 또래에 친구, 선배들이 슬슬 차를 사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괜히 나도 '차 한 대 사야 하나'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당장 모아둔 돈 탈탈 털고, 할부도 좀 하면 못 사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지금 나한테 차는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다. 굳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내가 차를 사야 하나 고민하는 이유의 99%는 또래의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가도, 또 이번에 차를 사게 됐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내가 얼마를 버느냐,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나보다 더 나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좋은 마음이 아니다. 하루빨리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2.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늘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만, 또 언제 삶의 터가 무너지고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이 오게 될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방심하다 훅 간다. 그 마음에, 당장에 돈이 있어도 맘껏 쓰지 못하고 괜히 움츠러들게 된다.


첫 월급으로 160만 원을 받았던 2년 반 전 계약직 시절에도 그 적은 월급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떼 적금을 들었었다. 언제 계약이 끝나고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당장 잘리더라도 몇 달은 근근이 용돈 써가면서 생활할 수 있는 돈을 항상 쥐고 있어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그때 나는 실직하지 않았고, 맞춤 맞게 이직도 잘해서 공백기 없이 돈을 꾸준히 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모아둔 돈들을 거리낌 없이 어딘가에 써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결혼하려면 요새 얼마가 든다는데, 서울에서 집 사려면 몇억은 들고 있어야 한다는데, 애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돈이 얼마가 든다는데 등등. 주변에서 빈번하게 들려오는 이런저런 앓는 소리들 때문에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 더 치열하게 모아야 한다'라는 조바심이 지름신을 붙들어 매고 있는 중이다.


어찌 될지 모르기에 아껴 쓰고 저축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 때문에 내가 지금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게 무조건 좋은 거 같지도 않다. 인생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불안하더라도 나는 마음에 여유를 갖고, 쓸 때는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나에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그게 나에겐 안정적인 삶보다도 좀 더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3. 나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라는 것.

사실,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돈을 무조건 많이 벌어야 한다(안정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 같다. 솔직히 엄청 욕심부리며 사는 게 아니라면 나 한 명의 밥벌이 정도야 못 할 이유가 있겠냐는 게 소박한 내 자신감이다.


그런데, 내 인생이고 내 삶이지만, 또 절대로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할 수는 없는 게 인생이다. 때문에 나는 내가 지켜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평생을 자식 농사에 헌신하신 부모님의 건강이 날로 쇠해지시는 걸 보면서 '저분들의 노년에 조금이라도 여유와 보탬이 되어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종종 숙연해진다(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더 많이 들곤 한다). 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꿈을 인생 가운데 펼칠 수 있게 조력하는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도 든다(그런 남편, 그런 아빠가 되지 못할까 봐 결혼이 두렵기도 하다). 나뿐만 아니라 그 모두의 삶의 무게를 일정 부분 나눠서 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라면 굳이 많은 돈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딱히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결핍을 같이 짊어져달라고 하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나는 꽤나 자주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누군가의 삶을 거뜬히 책임져줄 수 있을만한 경제적 자유를 하루빨리 만들어놓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쌓아두는 데 목을 매게 되는 거 같다.




이것들 외에도 돈 앞에 내 삶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찌 됐건 결론은 이거다. 지금 당장의 나는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여러 외부적 요인들 때문에 나는 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내 능력 여하에 따라 자족하며 살면 되는 거 같다가도, 이런저런 요인들 따지고 생각하다 보면 못해도 n억은 갖고 있어야 된다는 비현실적 수치에 부딪히게 돼버리니까. 근데 또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함이나 탁월함이 있지 않으니까.


그런 고민들 속에서 앞으로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선택의 방향성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적게 바라고 자족하는 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라는 것이다. 굳이 내 욕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돈을 바라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해야 할 때도 있을 테니, 모든 것에 욕심을 내려놓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바라는 법을 배우는 게 좀 더 현실적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소유보다는 과유불급의 자세가 나에게는 좀 더 맞는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2020년 12월 21일 오후 4시에 내가 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신념이다(물론, 언제 또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