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인내는 숙명이다
때수건으로 살갗을 벅벅 문지르면 떨어져 나오는 잔해들과, 나의 일상이 까칠한 세상에 문대질 때 비로소 빛을 보게 되는 부산물이 '때'라는 공통된 음운을 사용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때는 까칠한 무엇인가에 온 몸을 부비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이다. 때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죽은 세포들을 떨궈내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살결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때'는 쓰라리고 아픈 마찰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야 실체를 드러낸다.
때를 드러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마찰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때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개운함은 꽤나 매력적이다. 그래서, 쓰라린 고통을 참으며 열심히 살갗을 문댄다. 온몸이 벌겋게 부어오를 때까지 부비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게,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 내 눈 앞에 실제가 되어 떡하니 떨어져 나오게 될 '나의 때'를 기다린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인내는 숙명이다. 무엇인가에 노력을 쏟아야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바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얻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참 꿀 같은 일이다. 하지만, 자고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무엇인가를 바라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빵을 먹고 싶으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해도 돈을 내야 하고. 명품 옷을 입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간절히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마냥 손 놓고 있으면서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일종의 도둑질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때를 간절히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때'의 가치만큼의 무엇인가를 값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과정 중에 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과업들에 책임을 다하며, 오늘의 내가 지불해야 할 최선의 노력을 있는 힘껏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을 가장 버겁게 느껴지도록 하는건 다름 아닌 '불확실성'이다. 이렇게 매일을 최선을 다해 절박하게 살아낸다고 한들 내가 바라는 '나의 때'가 곧바로 그 실체를 드러내 주는 것은 아니니까. 기약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무척이나 지치게 만들기에, 나는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잘 추스르기 위해 무진장 애쓰는 중이다. 그러한 감정의 요동침은 또 다시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고, 그렇게 나의 20대 후반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차고 있는 중이다(비단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보다 한참 앞선 연차에 있는 선배들을 보며 동경과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듯한 모습. 지금의 나에게는 없는 그분들의 여유를 보면서 괜히 어떠한 열매를 볼 준비도 아직은 되어있지 못한 내 모습을 부정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분들의 때를 마냥 부러워만 하면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그분들이 겪어온 인내의 시간들에 대한 무례함이다. 그분들도 분명 자신들만의 힘듦과 고충을 뚫고, 끝까지 인내해냈기 때문에 지금 그때를 누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겉으로 드러난 여유 이면에 감춰져 있는 지난한 세월의 무게를 경시하고, 그저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모습만을 보며 부러워하는 건 옳지 않다. '때'에는 언제나 아픔이 따르기 마련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 마음으로 난 오늘도 '나의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도둑질을 할 순 없으니, 내가 간절하게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만큼 노력을 지불하면서. 그렇게 매일을 성실히 살아가다 보면, 그리고 세상과의 마찰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감격스러운 '나의 때'를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좀 더 마음을 굳게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