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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less conversation Jul 19. 2020

익숙한 것들 다시 들여다보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2011 - 말콤과 시저의 작별

비건살이의 첫 아침.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괜스레 마음이 새롭다.

새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유부초밥 한 알로 하루를 시작했다.

원래부터 좋아하는 메뉴이니 다행이다.



이삿짐 포장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 스벅에 자리를 잡았다.

블루베리 베이글..? 베이글에는 버터가 들어갔었던가 생각해본다.

크림치즈는 당연히 못 먹으니 뻑뻑한 베이글만 질겅질겅 씹을 상상에 이르러 마음을 접고 아래층 푸드코트로.


콩비지 김치찌개.

오.. 콩비지도 원래 좋아하는 메뉴.

육수를 뭘로 냈는지 알 수 없고 아마도 조미료가 들어갔겠으나, 

대놓고 고기 국물입니다 하는 - 설렁탕, 선짓국, 황태해장국 등 - 메뉴들 말고는 그냥 먹기로 합의를 본 터라 점심메뉴는 콩비지로 결정.

숟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여가며 찌개 속 고기들을 피해 국물을 떠먹다가, 아무 생각 없이 진미채를 집어 들었다.

아차. 진미채는 오징어였지... 

뭐든 입에 넣기 전에 일단정지해야겠다.


그나저나 이런 백반에서 내가 안 먹는 반찬은 어떻게 하나...

주지 말라고 하거나 돌려드리면 되겠구나.

배식대를 돌아보니 다들 너무 바쁘게 일하고 계셔서 말을 걸기도 미안할 지경.

불필요한 음식쓰레기를 만들어 낸 것을 반성했다.



이삿날에는 중화요리. 예상대로 메뉴판에 먹을 수 거의 없었으나 몇 가지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잡채밥에 고기 빼고 해 주실 수 있나요?

앞으로 한 달간 자주 하게 될 질문이겠지.

짜장면과 라조기, 군만두와 함께 나의 잡채밥이 도착했다.

오늘이 비건 살이 23일 차 정도였다면 라조기를 보며 내적 갈등이 생겼겠지만 첫날이라 별 감흥이 없다.




고기가 있든 없든 잡채밥 맛은 똑같았고, 

라조기에 들어간 브로콜리와 튀김옷 꼬다리에서도 라조기와 똑같은 맛이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치킨파우더와 미원의 힘이겠지,

얼마 전에 채소분말 조미료를 구매했는데 그걸로 어디까지 맛을 채울 수 있을지 해봐야겠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바이주를 꺼냈다.

(설마 바이주도 달걀흰자로 필터링한다거나 하진 않는 거겠지??)

'조금 바보처럼 살면 살아있는 신선이 된다.'는 은유를 이름에 새긴 술이다.

술 마시면서 되새기기 좋은 말이다. 


비건 살이 첫날.

적정선에서의 타협 덕분에 번뇌와 갈등 없이 평화롭게 클리어.






#비건 일기 #vegan #비건으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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